노트북 – 비와 기억이 놓은 영원한 첫사랑

노트북 – 첫사랑의 운명적 끌림 한여름 놀이동산의 관람차, 삐걱대는 철제 바구니 사이로 노아가 몸을 내밀어 “오늘 나랑 데이트해 줘요”라며 외친 순간부터, 나는 이 영화가 ‘우연’을 ‘운명’으로 바꿔 놓는 방식을 마음 깊이 믿게 되었다. 첫사랑은 원래 논리보다 심장 박자에 가깝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이유도 없이 빨려 들어가고, 거절당해도 포기하기보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철봉에 매달려 버티는 … 더 읽기

밀수 – 바다 밑 금빛 음모와 여인들의 파도

밀수 – 해녀들의 물장난, 바다를 뒤흔들다 1970년대 중반, 군천 앞바다는 누런 밀물을 품고 있지만 그 물살 아래에는 서울 장안의 금값을 뒤흔들 ‘비밀 보따리’가 숨겨져 있다. 영화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새벽 안개를 뚫고 뻗어 나가는 순간부터 관객의 폐 깊숙이 소금을 들이붓는다. 물질의 리듬은 근육을 짜내는 호흡법이자 해녀 공동체가 공유하는 암호 같은 것인데, 류승완 감독은 … 더 읽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아파트 딜레마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디스토피아가 던진 질문 서울 하늘을 뒤덮던 빌딩 숲이 한순간에 무너지자, 유일하게 서 있는 ‘황궁아파트’는 곧 인간 군상(群像)의 축소판이 된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왜 우리는 콘크리트 박스에 목숨을 걸었을까?”라는 물음을 관객의 가슴팍에 쑤셔 넣는다. 십수 억짜리 대출을 감내하면서까지 사야만 했던 신축 단지, 입주민 카페에서 벌어지는 층간소음 혈투, 출입 카드 없으면 돌아서야 하는 경비초소…. … 더 읽기

더 킹 – 권력과 욕망의 달콤한 붕괴서사

더 킹 – 권력의 달콤‧잔혹 성장곡선 한강을 따라 난 밤길, 네온사인처럼 번쩍이던 주인공 박태수의 욕망은 처음엔 단순했다. “나도 한 번 쯤 세상을 주무르는 편에 서 보고 싶다”—그 한 줄짜리 꿈이 공무원 시험책 귀퉁이에 메모처럼 적혔을 때는 소박해 보였지만, 영화는 그 메모가 어떻게 권력 카르텔의 DNA와 뒤엉켜 괴물로 부풀어 가는지를 집요하게 보여 준다. 태수는 “양아치 출신의 … 더 읽기

드림 – 골대를 향한 무모한 희망질주서사

드림 – 홈리스 월드컵의 눈물과 웃음 흙바닥 냄새가 그대로 배어 나오는 임시 연습 구장은 첫 장면부터 관객의 귓가를 두드리는 맥박음으로 가득하다. 영화 〈드림〉은 실제 홈리스 월드컵을 모티브로 삼아, “집이 없다는 사실이 곧 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들려준다. 경기 규칙조차 제대로 모르는 선수들이 땡볕 아래서 어설픈 패스를 주고받을 때, 우리는 … 더 읽기

30일 – 기억상실 숙려 로맨틱 폭소극 대소동

30일, 기억상실 부부의 좌충우돌 숙려 기간 사랑해서, 아니 정확히는 사랑했다고 믿어서 결혼까지 내달린 두 사람이 어느새 서로를 모기쯤으로 여기는 사이가 되었다. “존재 이유를 모르겠는데 왜 자꾸 나타나?”라며 눈만 마주쳐도 속을 뒤집던 이들은 법원에서 숙려 기간 30일을 선고받으며 이혼 코스프레의 결승선을 눈앞에 두지만, 뜻밖의 교통사고로 동반 기억상실이라는 2차 반전을 맞는다. 문제는 뇌만 초기화됐을 뿐 몸엔 그동안 … 더 읽기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유쾌한 납량 판타지

천박사 퇴마 연구소 – 강동원이 그려낸 새로운 히어로상 ‘천박사’라는 이름부터가 이미 장난기 가득한데, 막상 스크린에서 강동원이 이 캐릭터를 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장난을 넘어 묘한 설득력을 만든다. 정장을 세팅하고 퇴마 칼을 휙 꺼내 들 때의 실루엣은 어디까지나 만화적인데, 정작 배우 본인은 그 만화적 선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현실로 끌어당긴다. 나는 강동원의 예전 필모그래피에서 ‘잘생긴 얼굴+멋진 … 더 읽기

서울의 봄 권력의 역습과 시민의 저항

서울의 봄 – 역사의 시계가 움직이다 1979년 10월 26일의 총성이 울린 뒤부터 영화 「서울의 봄」 은 거대한 시계를 돌리듯 분 단위로 압축된 역사의 톱니바퀴를 보여 준다. 벙커 한가운데로 쏟아져 들어오는 장교들의 발소리, 땀에 번진 무전기 잡음, “대통령 서거”라는 단 한 줄 보고가 전해질 때의 공기 진동까지—카메라는 이 모든 촉각적 긴장을 따라가며 관객의 심장을 초단위로 세밀하게 … 더 읽기

노량 죽음의 바다, 비장한 심해전의 서사

노량, 야심찬 삼부작의 유종의 미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 지평을 열었던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이순신 삼부작’이 정말 완성될까 의문이 컸다. 투자 철회도, 캐스팅 난항도, 대규모 해전 CG 기술의 한계도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김한민 감독은 무려 10년에 걸친 기다림 끝에 한 편도 빠짐없이 스크린 위에 올려놓는 ‘뚝심’을 … 더 읽기

더 리더 – 문맹과 죄의 구원 서사 이야기

더 리더 – 문맹과 죄의 그림자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한나 슈미츠’는 처음엔 그저 무뚝뚝하고 과묵한 여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15살 소년 마이클의 시점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걸친 외투 너머로 오래 서린 그림자를 감지하게 되죠. 그 그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문맹’**입니다. 그러나 고레에다식 따뜻함이나 스필버그식 휴머니즘과 달리, 스티븐 달드리는 문맹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눈먼 무지는 한나를 나치 친위대의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