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 – 사랑도 계획될 수 있을까
매기는 인공수정 키트를 손에 쥐고도 시험지 앞에 선 고등학생처럼 마음이 복잡합니다. ‘사랑 없는 출산’이라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려는 순간, 영화는 한 편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전개되죠. 우리는 보통 로맨스를 운명이나 우연의 영역에 두지만, 매기는 액셀 파일을 열어 셀 단위로 미래를 배치하려 합니다. 이런 계획형 사랑법은 어쩐지 모래 위에 설계도를 그리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파도 한 번이면 지워질 걸 알면서도 정교한 선을 긋는 집요함—그게 매기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존을 만나면서 그녀의 정교한 각본은 예기치 않은 변수로 덮입니다. 계획표에는 없던 ‘심장이 덜컥’하는 순간, 모든 셀이 붉은 오류 메시지를 띄우죠. 그럼에도 매기는 포기 대신 업데이트를 택합니다. “계획이 틀어지면? 또 세우면 되지!”라는 뻔뻔한 웃음에는, 실패를 겪어 본 사람이 얻는 유연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도 프로젝트 관리처럼 간트 차트로 그릴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시도를 통해 오히려 ‘예측 불가’의 마법을 환기합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라는 진부한 명제를 매기의 하이힐과 브루클린 겨울바람으로 상쾌하게 환기한 셈입니다.
매기스 플랜 – 삼각관계? 아니, 오각관계의 묘미
처음엔 매기·존·조르제트로 이어지는 삼각형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각 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 오각형, 육각형, 심지어 원형에 가까운 소용돌이가 됩니다. 매기는 존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존의 전 아내 조르제트에게 묘한 연대감을 느끼고, 존은 매기에게 이끌리면서도 미완성 원고와 자아 도피 사이에서 헤매며, 조르제트는 냉철해 보이지만 빈틈 속에 존을 여전히 품고 있죠. 그리고 거기에 ‘정자 기부자’ 가이가 던지는 히치하이크식 유머, 매기의 절친 부부가 제공하는 돌직구 현실 조언까지 얹히면, 인물들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치 뉴욕 맨해튼의 교차로처럼 얽히고설킨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관객은 신호등 없는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을 맛봅니다. 흥미로운 건 이 복잡한 다각관계가 질투나 배신의 막장으로 흐르기보다,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순환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소유하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상호 실험하는 실험실일지도 모릅니다. 존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려는 매기의 괴짜 계획이 허무맹랑해 보이면서도 공감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실은 모두, 사랑 앞에서 과학자이자 실험쥐니까요.
매기스 플랜 – 뉴요커의 일상에 스민 로맨틱 코미디
레베카 밀러 감독은 맨해튼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브루클린 거리의 소박한 겨울 노점과 그리니치빌리지의 공원 벤치를 비춥니다. 카메라는 힙스터 카페의 김 서린 유리창 뒤편에서 두 사람이 커피 머그를 맞부딪히는 소리를 담아내고, 유기농 마켓의 캐셔 벨소리에 맞춰 등장인물들의 대화 리듬을 조율합니다. 덕분에 관객은 관광 엽서 같은 ‘겉핥기 뉴욕’이 아니라, 현지 온도와 습도를 품은 생활 뉴욕을 체험하죠. 매기가 유모차를 밀고 아이스스케이트장을 가로지를 때, 배경으로 흐르는 포크록 기타 스트로크는 겨울 공기에 박힌 설탕 가루처럼 은은하게 반짝입니다. 도시가 서사 속 공간을 넘어 ‘캐릭터’로 기능하는 셈이죠. 특히 눈 덮인 캠퍼스에서 매기와 조르제트가 속내를 터놓는 장면은, 뉴욕 겨울의 쓸쓸함이 두 여성의 미묘한 동맹감과 절묘하게 교차하며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이 영화가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이면서도 쉽게 녹지 않는 이유는, 도시가 주는 쌀쌀함이 인물들의 구수한 유머와 적당히 뒤섞여 상반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뉴욕은 이들에게 무대이자 실험실이며, 때로는 냉정한 심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태어난 웃음과 한숨은, 도시의 차가운 보도블록을 딛고 올라온 ‘생활형 로맨스’라 더 오래 마음을 간지럽히죠.
매기스 플랜 – 아이러니한 단어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실패 친화력’이라는 단어가 맴돌았습니다. 매기는 인공수정 실패, 연애 실패, 육아 실패—끝없는 오류 메시지를 경험하지만, 매번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도합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영화 밖의 내 일상과 겹쳤습니다. 계획한 대로 풀린 날보다 어그러진 밤이 많았고, 틀린 선택 때문에 자책하며 잠 못 이룬 적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죠. 그런데 매기는 스스로를 비난하기보다 “다시 설계해 볼까?”라고 웃습니다. 그 태도는 반짝이는 실수 조각을 주머니에 모아 무늬 있는 인생 비단을 짜내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내 실수들을 그렇게 꿰매 보면 의외로 근사한 패턴이 나올지 모른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은, 매기가 들이켜던 따뜻한 사이다 거품처럼 조금은 발그레해 보였습니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초안을 품은 드로잉 패드입니다. 잘못 그린 선을 지우개로 없애기보다,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칠해 독창적 곡선을 만드는 과정—그것이 우리가 매일 아침 ‘다시 해보자’고 중얼대는 이유 아닐까요? 매기가 남긴 웃음 섞인 가르침을 간직하며, 내일은 나도 한 줄짜리 새로운 플랜을 써 보려 합니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인생은 매번 수정 저장되는 스케치니까요. 내일부터 다시 일어나서 화이팅!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함께 달려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