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바이, 웬디 – 스타트렉 원고가 이끈 700km 대모험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약 700킬로미터. 지도 위에 선만 그어 보면 한낮에 자동차로 훌쩍 다녀올 수도 있는 거리지만, 웬디에게 그 여정은 우주탐사선이 알파센타우리로 향하는 것만큼이나 아득한 모험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특성상 낯선 자극에 압도되기 쉬운 그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둔 체크리스트에 따라 먹고, 입고, 걷고, 쉬는 법을 익혀 왔다. 월요일에는 파스텔 민트 스웨터, 화요일에는 노란색 후디, 수요일에는 물방울무늬 원피스 같은 ‘옷의 루틴’도 그래서 중요했다. 하지만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 마감일을 하루 앞둔 새벽, 우체국 택배 접수가 닫혔다는 사실은 이 평화로운 루틴에 거대한 운석처럼 떨어졌다. 웬디는 손에 땀이 배도록 ‘계획 B’를 검색하다가 침묵하던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직접 전해 주면 돼.” 그 한 문장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 순간, 밟아본 적 없는 페달이 밟히고, 수동으로만 열리던 마음의 문이 처음으로 자동 슬라이드 방식으로 열렸다. 그는 집 떠나는 길목마다 체크리스트를 임시로 덮어 쓰고, ‘할리우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내비게이션 목적지에 입력했다. 시나리오 원고와 간식용 초코바, 그리고 사고 예방용 이어플러그를 담은 배낭은 우주복이나 다름없었고, 뒤쫓아온 유기견 피트는 예상치 못한 승무원이 되었다. 버스 기사에게 “개는 탑승 불가”라며 쫓겨난 사건, 교통카드를 훔쳐 달아난 청년, 터미널 화장실에서 맞닥뜨린 과호흡 발작…. 여정 곳곳에 도사린 변수는 웬디에게 ‘미지의 소음’으로 폭주했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의 아마추어 정신처럼 “한 걸음만 더”를 반복하며 노트북 타이핑 속도를 높였다. 길 위에서 수십 번 읽고 또 고친 대사는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도 한 번의 워프 드라이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결국 새벽별이 사라질 즈음, 웬디는 스튜디오 접수창구 앞에 착륙했고, 담당자의 무심한 표정에도 주눅 들지 않은 채 원고를 두 손으로 건넸다. 진동으로만 울리던 핸드폰이 언니 오드리의 안도 섞인 전화를 받아 내리 울렸고, 그 순간 웬디의 700킬로미터는 ‘한 줄의 서명’만큼 짧고 또렷한 거리로 바뀌었다.
스탠바이, 웬디 – 루틴을 깨고 나선 ‘용감한 걸음’
웬디의 하루는 빛과 그림자가 정확히 일정한 시계를 닮아 있었다. 오전 8시 기상, 8시 15분 애플시나몬 시리얼, 9시 05분 산책, 9시 42분 스타트렉 블루레이 23분 시청, 10시 15분 시나리오 작업…. 그의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궤도 위를 돌았고, 그 안정된 궤도 덕분에 감각 과부하 없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틴은 동시에 벽이었다. 신호등 한 칸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동네 베이글 가게조차 웬디에게는 “스파크 없는 워프 드라이브”처럼 부적합한 모험으로 분류되었다. 그렇기에 원고를 손에 쥐고 집을 나선 순간은, 방구석을 떠나 별자리 항해에 몸을 싣는 ‘용감한 걸음’ 그 자체였다. 도심 버스 환승 터미널에서 만난 노부인은 웬디를 ‘특별 관리 대상’이 아닌 ‘길 잃은 여행자’로 대했다. 그녀는 행선지도 묻지 않고 “나도 젊을 땐 무작정 뉴올리언스까지 히치하이킹했단다”라고 과거의 별빛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는 사이 웬디의 심박수는 잠시 루틴의 BPM을 초과했지만, 대신 “낯선 충격=위험”이라는 등식이 서서히 풀렸다. 허름한 간이휴게소에서 만난 군복 차림의 병사는 강아지 피트를 쓰다듬으며 “나도 집에 돌아가면 스타워즈랑 스타트렉 마라톤부터 할 거예요”라고 웃었고, 웬디는 스포크가 감정 억제를 해제하듯 입 꼬리를 들어 올렸다. 여행이 늘 낭만적이진 않았다. 새벽 버스에서 칸막이 너머로 들려온 욕설, 깜빡 잠든 사이 훔쳐 간 도난지갑, 심야병원 응급실에서 경험한 몸 떨림 발작…. 그러나 웬디는 위기마다 ‘다음 방안’을 계산했다. 도난지갑 대신 초코바를 팔아 버스비를 마련했고, 발작이 왔을 때는 긴 호흡으로 “기본 루틴”을 복구했다. 이 모든 과정은 ‘규칙=울타리’라는 통념을 ‘규칙=발판’으로 변환했다. 루틴을 가동한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안정시키고, 루틴을 잠시 중단한 덕분에 미지의 우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웬디가 깨달은 용감함은 거창한 비행이 아닌, ‘두려움의 매뉴얼’을 들고도 한 발을 내딛는 ‘작은 변주’였고, 그 변주는 별빛보다 은은하게, 그러나 세상 어떤 탐험기보다 선명하게 빛났다.
스탠바이, 웬디 – 스팍에게서 찾은 나의 얼굴
웬디가 스타트렉에 빠진 이유를 단순히 ‘덕후 본능’으로 축소할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 해석보다 논리 퍼즐에 더 능숙했고, 타인의 표정을 해독하려면 마치 외계 언어 분석처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벌컨과 인간의 혼혈로 태어나 “논리가 감정보다 우월하다”는 교리를 지키려 애쓰는 스팍은, 그런 웬디에게 거울 같은 존재였다. 스팍이 커크 선장과 갈등하면서도 ‘텍트릭 내파’를 넘어 우정을 선택하듯, 웬디 또한 언니 오드리와 ‘가족이지만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서늘한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 했다. 그의 시나리오 속 스팍과 커크는 우주 괴생명체의 언어 구조를 해부하다가, 결국 활주로 끝에서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한 문장에 도달한다. 그 장면을 구상할 때 웬디는 아마도 오드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오드리가 결혼과 육아 준비로 바빠지며 “같이 살기는 어려워”라고 말했을 때, 웬디는 그 말을 ‘감정적 거절’이 아닌 ‘논리적 현실’로 번역해야만 했다. 하지만 번역기에는 빠져 버린 톤과 숨결, 즉 ‘여전히 사랑한다’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로드무비 후반부, 웬디가 도심 경찰에게 밀려 구석진 골목에 웅크려 있을 때, 한 경찰이 스팍식 경례와 함께 크링온어로 “qaplaʼ(행운을)”라고 인사한다. 그 짧은 순간, 웬디는 처음으로 ‘내 언어가 세상과 접속될 수 있다’는 희열을 맛본다. 이는 스팍이 활주로 끝에서 커크의 손을 잡은 장면의 현실판이자, 웬디가 자매 관계를 ‘논리 너머’로 확장하는 열쇠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오드리가 건넨 “예전엔 네가 뭘 원하는지 몰랐어”라는 고백은, 스팍이 인간성에 눈뜨는 대사와 겹쳐 들렸다. 나는 그 장면에서 피트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던 웬디가, 잠깐이나마 우주 함교의 캡틴 체어에 앉아 있는 듯한 당당함을 느꼈다고 확신한다. ‘덕후’라는 단어는 흔히 틀 안에 갇힌 사람을 뜻하지만, 웬디에게 스타트렉은 자기 번역기를 확장해 주는 ‘우주 공용어’였다. 그리고 그 공용어 덕분에 가족, 경찰, 버스 승객, 낯선 노부인까지—세상은 웬디의 좌표를 다시 입력했다.
스탠바이, 웬디 – 이제 시작이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 나는 PC 바탕화면에 묵혀 둔 오래된 ‘미발표 글’ 폴더를 열어 보았다. “나도 언젠가 투고해야지”라며 파일명을 바꿔치기만 반복했던 원고들. 웬디가 접수창구 앞에서 “스탠바이!”를 외치듯, 내 글도 누군가의 손에 건네져야 비로소 존재가 완성될 것 같았다. 사실 웬디의 여정은 우리 모두의 메타포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일정표 안에서 살고 있다고 믿지만, 버스 한 대만 놓쳐도 마음의 지도가 뒤죽박죽이 되는 나날, 우리는 그때마다 루틴을 ‘울타리’로 삼거나 ‘사다리’로 삼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웬디는 울타리와 사다리를 동시에 품었고, 덕분에 자신이 얼마나 강인한지를 체험했다. 그는 공모전에서 최종 우승을 놓쳤지만, 스타트렉 제작진은 ‘특별 인정장’을 수여하며 “당신의 상상력은 우리 우주도 확장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관객인 내게도 도착했다. “당신이 가진 작은 세계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별자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다음 번 알람이 울릴 때, 우리는 잠시만 루틴을 미뤄 두고 그 별자리로 발을 뻗어 보자. 혹여 허공을 헛디뎌도 좋다. 스팍이 말했듯, “논리는 시작점일 뿐—인간은 뛰어넘을 때 비로소 성장한다.” 웬디가 그 증거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준비됐다면, please stand by. 망설임은 끝났고, 이제는 전송 버튼 하나로 나의 우주도 출항할 수 있다. 그토록 미뤄왔던 시작이 사실은 가장 조용한 용기였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