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 – 하루 두 번의 기적과 사랑

어바웃 타임 포스터
어바웃 타임 포스터

어바웃 타임 – ‘하루 두 번’의 기적을 배우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마음을 흔든 것은 ‘하루를 두 번’ 산다는 발상 자체였다. 팀은 아버지가 전수한 비밀 덕분에 아침에 겪은 짜증·후회·사소한 실수까지 밤에 몽땅 지우고, 다시 같은 하루를 천천히 음미한다. 처음엔 그 능력이 그저 편리해 보였다. 사고 난 커피잔을 피할 수 있고, 집 앞에서 놓친 버스도 다시 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팀이 두 번째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점점 달라진다. 그는 첫 번째 하루에선 눈치채지 못했던 주머니 속 극세사 행복을, 두 번째 하루에서야 발견한다. 지하철에서 건네받은 어설픈 미소, 비 오는 런던 골목에 반사된 투명한 우산의 동그라미, 메리가 불러 주는 “Il Mondo”의 한 소절 같은 것들. 영화는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기적처럼 확대한 셈이다. 나도 문득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다면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그냥 품에 안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90%는 그대로 둘 것 같다. 진탕 어그러진 순간이 있어야 그 옆의 반짝임이 더 또렷해지니까. 팀이 증명하듯, 같은 하루를 다시 걷는다고 해서 완벽한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결정적으론, 두 번째 하루를 빛내는 재료도 늘 첫 번째 하루 속 엉성함에서 길어 올려지니 말이다. 영화 속 ‘하루 두 번’은 시간을 되감는 마법이 아니라, 같은 창문을 다른 각도로 열어 보는 태도였다.

어바웃 타임 – 사랑을 되감는 시간 여행 레시피

‘사랑을 되감는다’는 표현은 낯설면서도 달콤하다. 팀의 사랑법엔 두 단계가 있다. 첫째, 엉망으로 틀어진 데이트를 되감아 새 실을 다시 꿰는 것. 둘째, 그럼에도 완벽해지지 않는 구석을 무심히 수용하는 것. 메리와 첫 만남 이후 팀은 번호를 잃어버렸다는 이유 하나로 시간을 반복해 미세 조정을 한다. 멍하니 서 있다가 인사 타이밍을 놓치면 바로 옷장으로 달려가고, 커피값을 계산하며 동전을 쏟아버리면 또다시 돌아간다. 덕분에 그는 ‘사랑의 지문’을 여러 번 찍어 보고, 가장 또렷한 모양을 고른다. 그러나 반복이 거듭될수록 그는 깨닫는다. 진짜 레시피는 레몬 제스트를 몇 그램 넣느냐가 아니라, 함께 웃으며 실패한 파이를 먹어 줄 사람이 옆에 있느냐는 것임을. 팀이 메리에게 프로포즈하기 위해 세 번이나 시간축을 조정하지만, 정작 메리가 눈물을 보이며 끄덕이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천둥번개 속 야외 결혼식이었다. 그 장면은 되감기가 아닌 생방송의 힘으로 빛났다. 빗물이 젖히는 드레스 자락과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둘은 서로를 향해 재빨리 웃음을 던진다. 그 미소엔 “행운이든 불운이든 같이 맞자”는 암묵적 동의가 새겨져 있다. 결국 영화가 알려 준 레시피는 단순하다. 사랑을 되감을수록, 되감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이 깊어지는 것. 사랑은 타임머신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순간을 어깨 맞대고 통과하며 숙성되는 요리였다.

어바웃 타임 – 아버지가 남긴 두 번째 인생 수업

팀의 아버지는 영화 내내 배경처럼 고요하지만, 결정적일 때마다 스토리의 심장박동을 맡는다. 그는 아들에게 “하루를 두 번 살아 보라”는 실전 지침을 주고, 마지막엔 “결국엔 한 번만 살아도 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다”라고 미소 짓는다. 폐암 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모닝커피에 휘파람을 얹는 그의 모습은, 시간의 유한성을 온몸으로 안아들인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음 같다. 내가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팀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과거로 돌아가 어린 팀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는 순간이었다. 찰나의 외출처럼 짧은 산책이었지만, 그곳엔 아무런 후회도 눈물도 없었다. 오직 두 사람의 발목을 간질이는 파도 소리와 손바닥에 닿은 작은 따뜻함뿐. 시간여행은 여기서 완벽한 이별 의식을 준비해 준다. 한 번 더 안고, 한 번 더 웃고, 그리고 돌아와 ‘지금’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아버지가 전한 두 번째 수업은 그래서 더욱 선명했다.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자잘한 결정들의 연쇄이며, 그 결정 앞에서 “일단 사랑 쪽으로 기울어 보자”는 것. 팀이 셋째 아이를 원하느냐고 묻는 메리에게 머뭇거리다 결국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것도, 그 수업이 뿌리내린 결과다. 영화는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매일 선택할 수 있는 생의 방향이 있음을 부드럽게 일깨운다. 이 수업은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의 어깨에도 가만히 손을 얹는다. “오늘 하루, 한 번 더 살아 볼까?” 하고.

어바웃 타임 – 시간여행

크레딧이 흐를 때 나는 휴대폰을 꺼내 오늘의 동선을 되감아 보았다. 아침에 흘린 커피, 지하철에서 무심히 스쳐 지난 낯선 얼굴, 그리고 회사 복도에서 어색하게 건네받은 캔디 하나. 별것 아니라고 넘겼던 순간들이 묘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이라는 큰 선물을 내게도 잠시 빌려 주었다. 물론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 오를 수는 없지만, 영화가 만든 구멍을 통해 나는 하루를 조심스레 되짚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결국 ‘지금’이라는 현장에서만 만져진다는 사실을. 팀이 능력을 내려놓고도 더 빛나는 하루를 꾸려 가듯, 우리도 작은 의식 하나면 충분하다. 출근길 흥얼거리던 노랫말 끝에 “좋은 하루 보내”를 덧붙여 속삭이는 것, 카페에서 커피컵을 받을 때 바리스타의 이름표를 한번 읽어 주는 것, 집 앞 슈퍼의 고양이에게 잠깐 눈을 맞춰 주는 것. 그렇게 살면, 영화 속 팀처럼 굳이 옷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하루가 두 번 살아진다. 첫 번째는 현실, 두 번째는 마음속 재생. 나는 오늘 밤 잠들기 전, 침대맡 스탠드를 끄고 눈을 감아볼 참이다. 팀의 방식대로 주먹을 꼭 쥐진 않겠지만, 아버지가 전한 레시피를 흉내 내며 오늘을 다시 포장해 볼 것이다. 어쩌면 내일 아침, 같은 거리 같은 버스를 타더라도 풍경은 살짝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소한 변주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 그게 《어바웃 타임》이 내게 남긴 가장 실질적인 시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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