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미 – 무대에서 피어난 반짝 로맨스

메리 미 포스터
메리 미 포스터

메리 미 – 스타와 평범남의 기적 같은 약속

팝스타 ‘캣’은 세상 모든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무대 위에서 갑작스럽게 마음이 부서진다. 약혼자이자 듀엣 파트너인 ‘배스티안’의 바람 소식이 전광판보다 더 밝은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어깨에 내려앉은 스포트라이트가 한순간에 번개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 그녀의 눈엔 ‘MARRY ME’라 적힌 종이를 어색하게 들고 선 한 남자가 보인다. 그는 화려함과는 담 쌓고 산 수학 교사 ‘찰리’다. 캣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당신이랑 결혼하겠다”라고 외치고, 열광하던 관객은 순식간에 결혼식 하객으로 변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약속’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면서도 강력한지 보여 준다. 누구에게나 약속은 보통 서로를 오래 알아가며 단단히 묶는 매듭이지만, 캣과 찰리는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운명처럼 매듭을 지어 버린다. 기적은 원래 일상의 논리를 무시하고 틈입하는 법이다. 두 사람이 서류보다 마음을 먼저 내밀어 맞잡는 그 순간, 무대 조명은 즉석에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탄생한다. 관객인 나 역시 의심보다는 설렘이 먼저 스며들었다. 우리 삶에도 가끔은 ‘왜?’보다는 ‘그래서!’가 힘이 될 때가 있다. 그 ‘그래서’에 몸을 실어 본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낯선 해안이 있다는 것을 이 황당무계한 약속이 증명한다.

메리 미 – 무대 위 즉흥 결혼의 두근거림

영화는 첫 장면부터 ‘현실 불가’를 외치는 듯 보이지만, 곧장 그 비현실을 설득하는 리듬을 깔아 둔다. 캣이 백스테이지를 돌고 돌아 노래 ‘Marry Me’의 첫 소절을 부르며 무대 위로 걸어 나갈 때, 카메라는 끊임없이 회전하며 들뜸과 혼란을 동시에 잡아낸다. 사운드트랙이 하늘로 치솟는 드론처럼 관객을 끌어올리고, 흔들리는 핸드헬드 숏은 캣의 심장박동과 박자를 맞춘다. 거대 LED 스크린 속 하트 이펙트가 터지는 가운데 그녀가 ‘우리 결혼할래요?’를 외치는 순간, 객석은 별빛이 쏟아지는 밤바다로 변모한다. 바로 그 밤바다 위에 종이배처럼 던져진 사람이 찰리다. 그는 천 명의 스마트폰 플래시 가운데서도 스스로 빛나는 타입이 아니기에 더 돋보인다. 두근거림은 자극적인 이벤트보다 뜻밖의 온기에 따라오는 법이다. 찰리의 낡은 셔츠 단추, 무대를 올려다보느라 살짝 기울어진 고개, 그리고 관객 파도 속에서 겨우 발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은 ‘선택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는 순수함을 발산한다. 그 반짝이는 불안이 캣에게 닿아 예상치 못한 공명을 일으킨다. 마치 음계 사이 틈새에서 튀어나온 불협화음이 곧 명곡의 후렴으로 이어지듯, 두 사람의 즉흥 결혼은 충동이 아니라 숨은 화음을 찾아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공연이 끝난 뒤 쏟아지는 앙코르 요청의 함성보다, 예기치 못한 정적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는 일이 더 로맨틱할 수 있음을 다시 배웠다.

메리 미 – 케미 폭발, 로맨스의 확률을 재다

수학 교사인 찰리에게 사랑은 언제나 ‘가능성의 그래프’로 보였을 것이다. 변수 X를 ‘캣의 세계적 스타성’, 변수 Y를 ‘자신의 평범함’이라 치면, 둘의 교집합은 0%에 수렴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는 차분히 이 확률의 역설을 풀어 나간다. 두 사람이 첫 데이트를 하는 곳은 맨해튼 고층 빌딩의 지붕도, 럭셔리 레스토랑도 아닌 중학교 수학 경시대회 현장이다. 찰리는 학생들 앞에서 캣에게 연립방정식을 설명해 달라고 시키고, 캣은 어설픈 필기체로 칠판에 ‘love = x + y’라고 적는다. 교실 가득 웃음이 퍼지는 동안 둘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1차 함수가 생긴다. 기울기는 ‘공감’, 절편은 ‘존중’이다. 관객은 그 함수가 점점 우상향하는 것을 목격한다. 특히 찰리가 캣의 SNS 라이브 방송에서 “확률 0%도 일어나느니?”라고 묻는 장면은 이 로맨스의 핵심을 요약한다. 캣은 주저 없이 “산술은 몰라도, 경험상 그렇더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은 통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실험’에 대한 선언이다. 영화는 이후에도 작은 데이터들을 쌓아 간다. 찰리가 캣의 화려한 투어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자고 제안할 때, 캣은 처음으로 승객들의 빈틈없는 어깨 사이에 서 본다. 반대로 찰리와 딸 ‘루’가 캣의 콘서트 백스테이지에 들어서는 날, 그는 수십 대 카메라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될수록 둘은 서로의 생활 좌표계를 조금씩 이동해 간다. 결국 확률이란 계산하기 전에는 무한 가능성일 뿐이라는 사실이, 두 사람의 교차점을 빛내는 불꽃이 된다.

메리 미 – 귀에 멤도는 메리 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 귀에는 여전히 ‘marry me, marry me’라는 후렴이 맴돌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울린 것은 노랫말이 아니라 ‘용기’라는 두 글자였다. 캣이 보여 준 용기는 화려한 안무나 높은 고음이 아니라 “망가져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외치는 태도였다. 찰리가 보여 준 용기는 평범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조차 자신만의 속도로 걸음을 옮기는 꾸준함이었다. 스크린 속 두 사람이 건넨 이중주 같은 용기는 극장을 나서는 내 발걸음에도 박자를 새겼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에 반사된 내 얼굴은 생각보다 들떠 있었고, 주말마다 미뤄 둔 ‘친구에게 안부 묻기’ 버튼을 툭 눌러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확률 0%도 일어나느냐”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고개를 저으며 하루를 접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0%가 어쩌면 아직 계산되지 않은 미지수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오래된 꿈이든 간에, 관객석 속 한 사람도 무대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게 해 주는 작품. 그래서 《메리 미》는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일상의 주사위를 다시 굴려 보자는 속삭임처럼 들린다. 나 또한 그 속삭임에 등 떠밀려 휴대폰 연락처를 스크롤하며 멈칫했던 이름 옆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오래됐지? 잘 지내?’― 보내기를 누르자마자 심장은 공연장 베이스 드럼처럼 쿵 하고 울렸다. 어쩌면 삶이란, 늘 마음속 관객에게 “나랑 같이 춤출래?”라고 묻는 무대 위 라이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답은, 생각보다 자주 ‘그래, 한번 해 보자’가 될 수 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