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 골대를 향한 무모한 희망질주서사

드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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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 홈리스 월드컵의 눈물과 웃음

흙바닥 냄새가 그대로 배어 나오는 임시 연습 구장은 첫 장면부터 관객의 귓가를 두드리는 맥박음으로 가득하다. 영화 〈드림〉은 실제 홈리스 월드컵을 모티브로 삼아, “집이 없다는 사실이 곧 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문장을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들려준다. 경기 규칙조차 제대로 모르는 선수들이 땡볕 아래서 어설픈 패스를 주고받을 때, 우리는 인물의 현 위치와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사각지대를 동시에 목격한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숨 넘어갈 듯 빠른 컷’은 홈리스 선수들의 좌충우돌을 리얼 다큐멘터리처럼 포착하면서도, 중간중간 용접 불꽃처럼 튀는 슬랩스틱 웃음으로 관객의 눈물샘 꼭지도 풀어 헤친다. 한밤중 공터에서 이어지는 “볼 대신 인생을 차자!”라는 즉석 구호는, 누군가의 조롱거리였던 ‘노숙’이라는 단어를 순식간에 ‘국가대표’라는 말과 나란히 세운다. 불가능해 보이던 이 대치는, 결국 인간이 본능적으로 품고 사는 ‘인정 욕구’의 다른 얼굴임을 증명한다. 감독은 이를 위해 선수들의 과거를 파편처럼 던져 놓는데, 채권추심원에게 쫓겨 원룸을 잃은 날까지도 갑옷처럼 축구화를 품에 안고 잤다는 환동의 회상, IMF 때 길거리로 밀려나고도 “다음 달엔 다시 공장에 붙을 거야”라고 속삭이던 효봉의 허탈한 독백이 대표적이다. 이런 회고 장면은 단순한 신파의 환기가 아니라, 홈리스라는 사회적 프레임이 아닌 ‘이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봐 달라는 절실한 사인이다. 공의 궤적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매번 하늘을 조금씩 더 길게 잡는다. 똑같은 푸른 하늘 아래서 천재 선수든 노숙인이든 똑같은 크기의 태양을 바라본다는 사실, 그 단순한 평등성이 영화의 첫 번째 스코어다. 그리고 웃음과 눈물을 한 장면에 접붙이는 연출 덕분에, 관객은 어느 순간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도 “저 장면은 내 과거, 혹은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자각 앞에 멈칫하게 된다. 웃음이 터지는 만큼 눈가가 시큰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그라운드에서, 의도치 않게 오프사이드 선언을 받을 수 있는 잠재적 후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경기 종료 휘슬 대신 “다음 경기는 인생 경기”라는 내레이션으로 끝을 맺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관객석에서는 패배도 승리도 구분하기 힘든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것이 바로 홈리스 월드컵이 선물하는, 씁쓸하고도 달콤한 역설적 감동이다.

드림 – 노숙인 대표팀이 만든 기적

영화 속 대표팀 결성 과정은 ‘가장 약한 연결고리가 가장 튼튼한 사슬이 된다’는 역설을 증명하는 매듭법 같은 서사다. 감독 홍대(박서준)는 처음엔 이미지 세탁용 프로젝트라며 시큰둥하게 등장하지만, 자신보다 몇 곱절 모자란 조건에서도 매일 새벽 자신을 불러내는 선수들의 몸짓에 조금씩 매료된다. 그 몸짓은 화려한 개인기가 아니라, 삶의 밑바닥을 기어 올라온 이들만이 갖는 끈적한 생존 본능에서 나온다. 빨랫줄 대신 철조망에 걸린 유니폼을 털어 가며 “내일은 꼭 풀냄새 나는 잔디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나누는 장면은, 어쩌면 스포츠 영화라는 틀을 넘어 대한민국 복지제도의 빈틈을 꼬집는 조용한 대자보다. 중반 이후 대표팀이 국제대회 출전을 앞두고 항공권조차 해결하지 못해 노숙 시설 후원금을 50원 단위까지 긁어모으는 장면은 극적 효과를 넘어선 현실 고발이다. 그 과정에서 소민 PD(아이유)가 “카메라가 아니라 눈으로 먼저 사람을 찍자”며 촬영을 중단시키는 에피소드는,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포획하는 도구라는 명분 아래 피사체의 존엄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결국 대표팀은 ‘남의 돈’이 아닌 ‘자신들의 빚’을 통해 비행기에 오른다. 여기서 빚은 단순한 채무가 아니라,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서약의 다른 이름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항에 내리자마자 울컥해 “서울보다 낡았는데 왜 이렇게 멋져 보이지?”라고 외치는 장면은 관객석에서 묘한 웃음을 자아내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국제 연맹의 싸늘한 시선이 현실의 서릿발을 끼얹는다. 세계 어디든 빈곤은 로컬이 아니라 글로벌 문제임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도 대표팀이 관중석 한켠에 자리를 털고 앉아 “우리는 1승도 못 했지만 1패도 안 했다”고 농담처럼 외치는 씬은 그 어떤 승리 인터뷰보다 짙은 울림을 남긴다. 경기 기록지에 남지 못한 0승 3패 1무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이미 그들이 대한민국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하루 더 견디게 할 서사를 얻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기서 과장된 기적 서사 대신 ‘패배 속 성장’이라는 현실적 기적을 보여준다. 선수들에게 남은 것은 우승컵 대신 낡은 축구화와 각자 목에 건 임시 신분증뿐이지만, 그들은 경기장 조명 아래서 “이것이 우리의 금메달”이라며 웃는다. 관객은 깨닫는다. 진짜 기적은 언론 헤드라인에 오르는 금빛 메달이 아니라, 공을 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일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는 마음 자체라는 것을.

드림 – 홍대·소민의 티키타카 케미

〈드림〉의 심장이 ‘홈리스 대표팀’이라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정서는 홍대와 소민의 끝없는 티키타카다. 박서준이 구현한 홍대는 한때 “잘생긴 전설”로 불렸지만, 직선적 성격 때문에 선수 인생이 곤두박질친 ‘셀프 디그’형 캐릭터다. 반면 아이유의 소민은 주기적으로 무너지는 시청률과 사수 없는 제작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웃픈 근성’을 장착한 프로다.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온도차가 뚜렷하다. 카메라 테스트를 이유로 홍대에게 “어깨 힘 좀 빼고 천천히 호흡해 보시죠”라고 지시하는 소민에게, 홍대는 “나는 호흡이 아니라 숨만 쉬어도 그림이 된다”는 식의 근자감을 던진다. 이 노골적 충돌은 곧장 듀오 콤비 플레이로 진화한다. 이병헌 감독은 두 배우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축구 용어인 ‘원투 패스’처럼 번갈아 가며 짧은 대사를 던지고 받게 한다. 예컨대 ‘이미지 세탁’이라는 자조 섞인 단어를 소민이 의도적으로 흘리면, 홍대는 “세탁은 빨래가 더러울 때 하는 거지 사람한테 하는 거 아니잖아”라고 응수한다. 이 즉흥 대화는 홈리스 선수들이 코뼈가 부러져도 웃어넘기는 장면에 그대로 중첩되어, 인간의 결점조차 유머로 환원하는 영화적 리듬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시점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추적한다. 소민이 레코딩 버튼을 끄고 선수 옆에 앉아 “이 장면은 방송용이 아니라 당신 삶의 화면 속 한 컷”이라고 속삭이는 순간, 홍대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본다. 핸드헬드 카메라가 살짝 흔들리는 덕에, 무심한 시선과 뜨거운 동정이 교차하는 3초 남짓한 공백이 관객에게 그 어떤 키스신보다 짜릿한 전율을 안긴다. 이후 둘은 ‘방송을 위해 달리는 팀’에서 ‘팀을 위해 방송을 버리는 제작진’으로 태도를 바꾼다. 마지막 경기 직전 소민이 “감독님, 오늘 공은 저희가 안 찍어도 되죠?”라고 묻자, 홍대가 “안 찍어도 내일 할 리플레이는 넘칠 거예요”라고 답하는 장면은, 두 캐릭터가 단순한 계약 관계를 넘어 ‘같은 꿈의 벤치’에 앉았음을 알리는 셀프 어시스트이자 골 세리머니다. 이런 케미 덕분에 〈드림〉은 스포츠 드라마에 흔한 멜로 클리셰를 회피하면서도, 관계성의 성장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감정선을 만들어 낸다. 결국 관객은 두 사람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포스터 속 포즈 하나만으로도 심박수가 높아지는 ‘대리 팀원’이 되고 만다.

드림 – 축구공 하나가 남긴 여운

영화를 본 날, 신촌 쪽 소강당에서 자정 가까이 상영이 끝났다. 스크린이 암전될 때 귀를 때리던 마지막 응원 구호가 아직 귓속에서 진동하는데, 극장 밖 새벽 공기는 마치 엔딩 크레딧 뒤의 연장 경기를 촉구하듯 싸늘하고도 선명했다. 택시를 기다리며 무심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알림창에는 ‘노숙인 지원 법률 상담 자원봉사 공지’가 떠 있었다. 작은 NGO 메일링 리스트에 몇 년째 가입만 해 두고 한 번도 답장을 못 했던 곳이다. 영화 전에 읽었다면 ‘또 일정이 안 맞겠지’라고 넘겼을 공지였지만, 그날따라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참여 가능합니다. 서류 정리라도 돕겠습니다”라고 적어 보내고 나니, 화면 속 ‘발송 완료’ 표시가 홈버튼처럼 느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만히 생각했다. 감독이 우리에게 던진 진짜 질문은 “당신은 뭘 하고 싶습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지금 하고 있습니까?”일지도 모른다. 축구공은 굴러가는 물체지만, 때로는 굴러가는 사람을 멈춰 세우기도 한다. 영화 속 홈리스 대표팀이 시합 내내 무너지고 깨지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자꾸 삐끗하며 굴러가지만, 그 삐끗함 때문에 오히려 옆 사람의 속도를 눈치챌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패스를 무심히 흘려보내지는 않았나, 혹은 내 패스를 받아줄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진 않았나. 그런 자문이 들었다. 어쩌면 〈드림〉이 주고 간 가장 값진 선물은, 그 질문을 새벽 공기 속에서 홀로 곱씹게 만든 ‘멈춤’ 그 자체다. 영화가 보여 준 기적은 월드컵 트로피가 아니라, 관객 각자의 일상에 작은 방향 전환을 허락하는 용기였다. 꼭 축구장 광팬이 아니어도,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인생의 터치라인 앞에 선다. 공이 발끝에 닿는 순간이 오면,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높게 차올려 보고 싶다. 그리고 혹 실패하더라도 한 번 더 달려가 잡아볼 용기를, 바로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에게 건네고 싶다. 내일 아침, 회사나 학교로 향하는 버스 창밖 풍경이 어쩐지 낯설게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드림〉이 남긴 ‘희망 질주’의 잔재가 아직 당신 가슴속에서 드리블을 이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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