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 기억상실 숙려 로맨틱 폭소극 대소동

30일 포스터
30일 포스터

30일, 기억상실 부부의 좌충우돌 숙려 기간

사랑해서, 아니 정확히는 사랑했다고 믿어서 결혼까지 내달린 두 사람이 어느새 서로를 모기쯤으로 여기는 사이가 되었다. “존재 이유를 모르겠는데 왜 자꾸 나타나?”라며 눈만 마주쳐도 속을 뒤집던 이들은 법원에서 숙려 기간 30일을 선고받으며 이혼 코스프레의 결승선을 눈앞에 두지만, 뜻밖의 교통사고로 동반 기억상실이라는 2차 반전을 맞는다. 문제는 뇌만 초기화됐을 뿐 몸엔 그동안 쌓인 ‘상처 메모리’가 퍽퍽히 남아 있다는 것. 부부였다는 사실부터 믿기지 않는데, 친정·시댁 어른들은 “환자에게 익숙한 환경이 약”이라는 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두 사람을 한지붕 아래 다시 몰아넣는다. 덕분에 청소기 호스며 빈 술병, 굴러다니는 이혼 서류까지 모든 사물이 트리거가 되어 일촉즉발의 코믹 지뢰를 깔아 둔 집에서 하루하루가 ‘폭소→정색→멍’ 삼단 콤보로 흘러간다. 기억을 잃은 남편은 낯선 아내에게서 묘하게 익숙한 잔소리 음계를 듣고 “내가 원래 이렇게 혼나고 살았나?”라며 당혹하고, 아내는 툭하면 “백수!”를 외치던 과거 자신을 모르는 남편에게 새삼 미안함과 얄미움이 교차한다. 숙려 기간이라는 제도적 ‘타이머’가 째깍대는 가운데, 두 사람은 좁은 집 안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며 각종 생활 흔적을 단서 삼아 잊힌 연애와 결혼의 서사 퍼즐을 맞춰 나간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원수도 과거를 잊으면 낯선 여행메이트가 될 수 있다”는 묘한 희망과, “다시 기억이 돌아오면 싸움이 2배로 거세질 수도 있겠네?”라는 불안 사이를 줄타기하며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경험한다. 결국 숙려 기간 30일은 결혼 전 3 천 일 연애보다 훨씬 빡센 ‘속성 재연애 트레이닝’이 되고, 관객은 “이별도 관계의 한 방식”이라는 현실적 메시지와 “그래도 서로 좀 덜 미워하고 살자”는 소소한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30일, 강하늘·정소민 코믹 케미 폭발 순간들

강하늘은 스물 시절 잉여력 200%였던 ‘경상도 청춘’의 잔재를 잔뜩 끌어와 “고시낭인 → 기억상실 귀요미”로 자연스레 변주한다. 머리를 긁적이며 “아 내가 원래 이렇게 귀가 얇았나?” 하고 중얼대는 순간도, “사법시험 공부하다가 버스 끊겨서 걸어왔대요”란 과거 대사를 자기 입으로 복기하다가 스스로 당황하는 모습도 관객을 자동 미소 짓게 만든다. 반면 정소민은 순한 얼굴로 꺼내는 핵 직설 화법과 물불 안 가리는 몸개그를 통해 캐릭터 스펙트럼을 폭발적으로 넓힌다. 특히 클럽 1차→야구장 2차로 이어지는 과거 회상 신에서 보여 준 ‘맑은 눈의 광인’ 모드는, 도망가는 전 남친을 향해 빠따를 던질 듯한 살벌함과 방금 솜사탕 사 준 남친에게 볼을 부비는 애교가 0.5초 간격으로 스위칭되며 폭소를 자아낸다. 서로의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몸에 밴 리액션은 남아 있어, 컵라면을 달라는 남편에게 아내가 “백수는 끓인 라면도 사치”라며 소금만 뿌려 주는 대목, 혹은 남편이 “원래 내가 잔소리 많은 사람인가요?”라고 순진하게 물을 때 아내 얼굴이 시나브로 굳어 가는 장면은 슬랩스틱과 현실 공감이 앙상블을 이룬다. 두 배우의 타이밍이 워낙 정교해 “저 애드리브 아니야?” 싶은 대사들이 난무하고, 관객은 “다음 컷에서 또 무슨 얼굴로 변할까?”를 기대하며 스크린을 놓치지 못한다. 이 덕분에 기억상실이라는 뻔한 클리셰가 ‘예측 불허 러브 코미디 드립집’으로 재탄생하고, 강하늘·정소민 조합은 “현시대 로코 계보에 확실히 이름 올렸다”는 찬사를 끌어낸다.

30일, 로맨틱보다 웃음! 핵심 개그 포인트 총정리

첫째, 장인·장모 빅매치. 결혼 승낙 장면에서 현직 종합격투기 챔피언 급 ‘욕·버럭·눈물’ 3단 콤보를 선보이는 장모, 그리고 영혼까지 끌어올려 따라 소리치는 장인 덕분에 하객은커녕 관객까지 얼어붙는다. 고작 10만 원 추기금 때문에 벌어진 백수·금수저 계급 갈등이 순간 막장극으로 돌변하는데, 이때 날아든 공포탄 한 발이 영화 후반부 “우리 친정이 총에 약해서 그래”라는 메타 개그로 재활용되는 구조가 꽤 영리하다. 둘째, 역대급 소품 플레이. 파손된 변호사 자격증을 멀쩡한 액자에 끼워 ‘라면 받침대’로 쓰는 초현실적 상념, 술병 피라미드와 이혼서류 산더미를 세트처럼 배치해 “가정을 포기한 예술가의 작업실” 같은 비주얼을 완성한다. 셋째, 주치의의 ‘드라마 예찬론’. 기억환자는 드라마 속 클리셰처럼 또 한번 머리를 맞아야 돌아온다며 정색하는 의사 덕분에, 관객은 ‘공포의 돌멩이 투척’ 시퀀스에서 배꼽 잡고, 동시에 “한국 막장 드라마 본의 아니게 사고 방조죄?”라는 셀프 디스를 맛본다. 넷째, 생활밀착형 언어 유희. “백수는 백수니까 백수를 못써!” 같은 고막 주먹질 대사부터, “콩깍지로 송곳질” 같은 미친 비유까지, 각종 SNS 캡처 예약 문장을 속사포로 뿜어내며 극장 구석구석 실소를 폭주시킨다. 마지막으로, 기억상실 타이머 활극. 새벽 알람시계 소리에 놀라 같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를 외계인 보듯 오열→욕설→사과→멍 하며 스스로 “이게 신혼이 맞나?”를 되묻는 장면은, 하이퍼 리얼 부부생활 다큐와 만화경식 코믹 컷 편집이 믹스된 독특한 리듬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30일》은 로맨틱 심장 떨림보다 ‘웃픈’ 상황 폭탄을 쉼 없이 던지며 관객의 복근을 지속 자극하는 방향을 택했고, 덕분에 상영 내내 터지는 폭소 속에서 “결혼도 코미디, 이혼도 코미디”라는 쓴웃음의 본질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30일, 결혼은 참 무서우면서도 재밌다

상영관 조명이 켜졌을 때, 내 옆자리 친구가 혼잣말로 “야 결혼은 참 무서우면서도 재밌다”라고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30일》은 결혼 생활의 ‘찌질함과 찬란함’을 풀숲처럼 뒤섞어 놓고, 관객에게 “당신은 어느 숲길을 걷고 있나요?”라며 슬쩍 웃고 묻는 영화다. 법원 서류 한 장, 숙려 기간 30일, 기억상실이라는 영화적 장치가 겹겹이 쌓이면서, 결국 핵심은 “우리가 왜 처음 사랑했는지조차 잊을 만큼 살다 보면, 관계는 언젠가 시스템 오류가 난다”는 뼈아픈 진실에 닿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 오류를 ‘강제 리셋’의 끔찍한 공포로만 그리지 않는다. 둘이 다시 낯선 방에서 처음 눈 마주친 순간, “어,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이렇게 편하지?” 하고 스스로 놀라는 기분, 그리고 그 편안함이 어디에서 왔을지 궁금해하며 천천히 서로를 탐구하는 과정이 기막힌 휴먼 코미디로 피어난다. 바라건대 우리 현실은 사고·망치·공포탄 없이도, 때때로 관계를 초기화할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혼이든 화해든, 적어도 “왜 같이 웃었는지”를 기억한 채 선택한다면 덜 후회할 테니 말이다. 극장을 나서며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화가 날 때 ‘백수!’ 대신 첫 만남 클럽 노래 한 소절을 흥얼거리기. 단 30초로도, 30일짜리 숙려 기간을 건너뛸 수 있을지 모른다.” 웃어도 울어도, 결국 우리가 붙들어야 할 건 함께 삶을 농담처럼 건네고 받아칠 ‘호흡’임을, 《30일》이 유쾌하게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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