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박사 퇴마 연구소 – 강동원이 그려낸 새로운 히어로상
‘천박사’라는 이름부터가 이미 장난기 가득한데, 막상 스크린에서 강동원이 이 캐릭터를 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장난을 넘어 묘한 설득력을 만든다. 정장을 세팅하고 퇴마 칼을 휙 꺼내 들 때의 실루엣은 어디까지나 만화적인데, 정작 배우 본인은 그 만화적 선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현실로 끌어당긴다. 나는 강동원의 예전 필모그래피에서 ‘잘생긴 얼굴+멋진 액션’이라는 공식을 수없이 봐 왔지만, 이번엔 그 공식이 은근슬쩍 비틀려 있다. 오로지 주인공의 초능력이나 섹시함에만 기대지 않고 오히려 ‘허세’와 ‘구멍’을 적당히 뒤섞어, 허세가 터질 때 터지고 허당이 드러날 때는 과감히 드러나게 내버려 두는 연기가 매력 포인트다. 씩 웃으며 가짜 퇴마 의식을 쇼처럼 선보이다가도 방울이 울리는 순간 공포에 질린 눈빛이 번쩍이면, 관객도 함께 “어… 진짜인가?” 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되니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힘의 폭발’보다 ‘책임의 성장’이다. 캐릭터는 처음부터 강한 칠성검의 후손이지만, 복수라는 사적 욕망과 진짜 퇴마사의 책무 사이에서 흔들린다. 강동원이 이런 양가 감정을 눈빛 하나로 눌러 담을 때, 나는 모니터 너머로도 ‘이 사람, 한층 더 농밀해졌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전무협지 같기도, 동네 사설 탐정 같기도 한 이 하이브리드 히어로는 “한국형 도사(道士) 히어로도 충분히 관객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작디작은 증명서였다. 덕분에 속편이 나온다면, 나는 그가 또 어떤 허세와 어떤 성장통을 뒤섞어 올지 기꺼이 표를 예매할 준비가 되어버렸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 유쾌 오컬트 복수극의 맛과 멋
이 영화가 진짜 매력적인 지점은 ‘오컬트’라는 장르적 외피를 한껏 차려입고도 결국은 속 시원한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착실히 전달한다는 데 있다. 초반부 가짜 퇴마 쇼 장면에서는 빛바랜 벽제사 느낌의 향 냄새 대신, 코믹한 대사와 과장된 불꽃놀이 효과가 연달아 터지며 관객을 먼저 웃게 만든다. 그러다 범천 일당이 본색을 드러내면 영화는 순식간에 ‘귀신이 몸을 옮겨 다니는’ 호러 설정으로 기어를 바꾼다. 이 급격한 장르 전환에도 흐름이 끊기지 않는 이유는 시나리오가 ‘복수’라는 단선적 동력으로 계속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그리고 설경 봉인의 비극적 서사까지 연결되면, 우리는 어느새 “그래, 다음 판에서 범천을 어떻게 한 방 먹이나 보자”라는 응원 모드에 진입해 있다. 팀플레이 역시 재미 포인트다. 기술 담당 인벤(이동희)의 폭죽·조명·도르래 특수효과가 판마다 화려하게 등장해 던전 공략 게임을 보는 듯하고, 귀신을 볼 줄 아는 유경(이솜)이 ‘보조 딜러+탐지자’ 역할을 해주니 전투 리듬이 끊임없이 요동친다. 무엇보다 ‘북을 치는 황사장(김종수)’이라는 고전적 장치가 가세해 전통 굿판의 흥취를 살짝 얹어놓는 순간, 관객은 오락성과 토속성 사이를 자연스레 왕복하며 흥에 빠진다. 딱히 복잡한 신념이나 거창한 메시지를 들고 있진 않지만, 이 리듬감 있는 팀전만으로도 두 시간 남짓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결국 ‘한 방에 통쾌한 복수’라는 한국 관객 특유의 민심 코드와 ‘귀신 보고 때려잡는 판타지’의 B급 감성이 절묘하게 조합돼, 적당히 짜릿하고 적당히 시원한 한 그릇의 볶음짬뽕 같은 오컬트 복수극이 완성된 셈이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 화려한 CG와 판타지 연출, 빛과 그늘
화면을 가득 채운 CG는 누군가에겐 ‘뽕맛 만렙’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조금 과한 구슬땡’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초반엔 휘황찬란한 부적 폭풍, 형광빛 설경 결계, 우주적 빛줄기가 동시에 화면을 덮치는 시퀀스에서 약간 눈이 피로해졌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감독은 애초에 ‘동네 무당 세계관’이 아닌, ‘만화책 12권짜리 판타지’를 2시간으로 압축하겠다고 마음먹은 듯했다. 그래서 실재감을 땔감 삼아 비주얼적 과시를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이는 마치 오락실에서 ‘버추어파이터’가 처음 3D 폴리곤을 선보였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랄까. 사실적인 디테일보단 “이 정도로 과감해야 네 눈이 시원하지 않겠냐”는 호기로운 제안이다. 물론 몇몇 장면, 이를테면 파랗게 번진 빙의 얼굴 분장이나, 사슬에 갇혀 뒤틀린 범천 분신들의 실루엣이 조금 투박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의상을 포함한 미술 팀의 결 단추 전개가 의외로 섬세해 감탄을 불렀다. 범천 추종자들의 검붉은 가면과 금속 부적 문양은 ‘사이비 종교 퍼포먼스’와 ‘동양 스팀펑크’의 묘한 교집합을 만들고, 천박사 팀의 검은 슈트+고서(古書) 자수 디테일은 현대적 깔끔함 속에 무속 연원의 흔적을 살포시 숨겨둔다. 덕분에 뻔할 수 있는 CG 홍수 속에서도 “이 장면, 스틸컷으로 걸어두면 꽤 근사하겠는데?” 싶은 순간들이 연달아 박힌다. 무엇보다 결말부, 성검 두 자루가 한 몸으로 결합하며 순백의 설경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는 한국 판타지 액션이 시도해 온 ‘빛, 부적, 무기’ 3단 미장센을 가장 현란하게 응축한 장면이다. 분명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이 투머치 비주얼 덕분에 영화가 지향한 ‘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활극’이라는 정체성은 또렷해졌고, 나는 CG의 미세한 거칠음보다 그 패기 자체에 먼저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늦여름 저녁 공기가 땀 냄새와 송진 냄새를 섞은 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극장 앞 포장마차에서 순대국을 시켜놓고 국물 한 숟갈을 뜨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귀신을 믿든 안 믿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범천 같은 악령일 수도, 천박사 팀이 보여준 연대의 끈일 수도, 혹은 관객석에서 파도처럼 번진 웃음소리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유치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 ‘유치함’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솔직한 주문이라고 믿는다. 오바된 CG, 직선적인 선악 구도, 심지어 뻔한 쿠키 영상까지—이 모든 과잉이 없었다면 나는 ‘어둠 속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져버린 동생’에 대한 주인공의 절절한 패배감과, 다시 칼을 쥘 때 솟구치는 부정(父情)의 잔열을 이렇게 또렷이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창밖에 흐르는 가로등 불빛이 설경의 부적같이 일렁였다. 강동원의 허세 섞인 미소, 이솜의 슬픈 눈, 이동희의 낙천적인 농담, 김종수의 북장단이 내 귓가에 여운처럼 맴돌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극장을 찾는 이유는 결국 거대한 텍스트나 난해한 은유보다, 눈앞에 벌어지는 쇼에 몸을 싣고 깊이 웃고, 순간적으로라도 마음속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는 걸. 그리고 누군가와 팔꿈치가 부딪칠 만큼 가까운 관객석에서 같은 순간에 같이 숨을 들이쉬고, 같은 장면에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 경험이야말로 ‘설경’이 아닐까—악령을 잠재우고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스크린이라는 또 다른 결계 말이다. 결국 나에게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가볍지만 진심을 잃지 않는 판타지”의 정의서였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과장되고도 따뜻한 이야기들을, 한밤중 순대국 국물처럼 진득하게, 천천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