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량, 야심찬 삼부작의 유종의 미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 지평을 열었던 순간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이순신 삼부작’이 정말 완성될까 의문이 컸다. 투자 철회도, 캐스팅 난항도, 대규모 해전 CG 기술의 한계도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김한민 감독은 무려 10년에 걸친 기다림 끝에 한 편도 빠짐없이 스크린 위에 올려놓는 ‘뚝심’을 보여줬다. 《한산》으로 심파 논란을 덜어내며 한층 단단해진 내공을 드러낸 뒤, 마지막 퍼즐 조각인 《노량》을 통해 전례 없는 대작의 무게를 마침내 완주해 낸 것이다. 삼부작이 모두 ‘이순신 vs 일본 수군’이라는 비슷한 구도를 품고 있음에도, 영화마다 핵심이 살짝씩 달라진 덕분에 관객은 전혀 다른 맛을 경험한다. 《명량》이 기적 같은 승리의 통쾌함, 《한산》이 전술적 두뇌 싸움의 짜릿함을 강조했다면, 《노량》은 영웅의 ‘퇴장’을 담아내며 서사적 깊이를 완성한다. 덕분에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상징이 단순히 ‘불패의 장수’가 아니라, 전쟁의 끝을 정리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비극적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셋 중 어느 하나 빠져서는 완결이 되지 않는 퍼즐처럼, 《노량》은 삼부작이 거둔 흥행과 예술적 의미를 한눈에 정리하는 촘촘한 ‘유종의 미’다. 극장을 나서는 길, ‘한국 영화사에 이런 프로젝트가 또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건 아마 나만의 감상이 아닐 것이다.
노량, 이순신 장군 최후의 비장감
《노량》이 던지는 가장 묵직한 질문은 ‘무적의 장수도 결국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다. 관객 모두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김윤석 배우의 이순신은 첫 등장부터 이미 사선을 넘나드는 기색을 풍긴다. 어머니의 부음을 뒤늦게 들은 채 전장으로 돌아와야 했던 역사적 사실, 셋째 아들의 전사 소식이 새벽 꿈처럼 흔들리던 내면, 그리고 끝없는 해전 준비로 닳아버린 육신까지. 카메라는 거친 파도보다 더 어두운 그의 눈빛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대사 대신 묵직한 숨소리와 날선 시선이 관객의 심장을 기묘하게 조인다. 그러다 북채를 들고 선상에서 군사를 독려하는 장면에 이르면, 그 무쇠 같은 침묵이 일순 붉게 타오른다. 북을 울리는 굵은 팔뚝, 적의 탄환이 스쳐도 멈추지 않는 고함, 그리고 ‘나의 죽음을…’로 시작되는 전율의 마지막 대사. 이순신 최후의 몇 분간은 영웅담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과장된 눈물 대신 잔잔한 경건함을 택해, 오히려 관객에게 더 깊은 슬픔과 존경을 남긴다. 나 역시 의자 끝에 매달린 채 “제발 아직은 쓰러지지 마십시오” 하고 숨죽여 응원했다. 하지만 모든 북소리가 멎고, 칠흑 같은 바다 위로 여명 한 줄기가 솟아오를 때, 우리는 깨닫는다. 이 순신의 죽음은 패배가 아닌 ‘완전한 승리’를 위한 마지막 돌격이었다는 걸. 그 비장함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극장의 공기는 일제히 숨을 삼키며 굳어버린다.
노량, 밤바다 해전이 선사하는 압도적 사운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시사회 전에 ‘밤바다라 너무 어두워서 퀄리티가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컸다. 그러나 첫 포성이 터지자마자 그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화면은 분명 낮보다 어둡지만, 대신 음향은 상상을 뛰어넘는 ‘풀 레이어’로 공간을 채우며 시각 정보의 빈틈을 단박에 메웠다. 파도에 함선이 부딪힐 때마다 나무가 비명이 섞인 듯 갈라지고, 화포가 발사될 땐 가슴팍이 물리적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물과 불, 목재의 파열음이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고, 마치 거대한 심포니처럼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한 덩어리로 들려온다. 그 결과, 관객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닷물과 화약 냄새를 ‘호흡’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관음포 협곡을 가로지를 때였다. 좌우 스피커에서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진린 함대의 북소리, 상단 어레이에서 사선으로 꽂히는 일본군 총성, 그리고 발밑을 뒤흔드는 조선 수군의 노 젓는 물살 소리까지. 사운드 디자이너가 준비한 수백 개 트랙이 서로 겹치고 튀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파동으로 완성되는 장면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웅크린 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투 본능을 느꼈다. 요즘 ‘돌비 애트모스’니 ‘4DX’니 극장 포맷이 다양해졌지만, 《노량》만큼 청각적 쾌감의 필요성을 증명해 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반드시 사운드 특화관에서, 가능한 한 스크린 밝기가 확보된 상영관에서 감상하시길 진심으로 권한다. 큰돈 주고 영화관 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이 작품이 단번에 증명해 줄 것이다.
노량, 그들이 보여주는건 무엇이었을까
영화관 불이 켜지자마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팝콘 봉투를 구기던 소리도, 엔딩 크레딧 곡조에 맞춰 흥얼거리던 웅얼거림도 잠시 멈춘 채,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 순간, 스크린 위에 남은 잔향이 관객들의 가슴에서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느꼈다. 《노량》은 단순히 전투 스펙터클이나 흥행 대작으로 기억되기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희생을 택한 한 인간의 의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순신의 죽음은 이미 역사책에 정답처럼 적혀 있지만, 영화는 그 정답을 살아 있는 질문으로 바꾼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 그리고 그 끝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나는 극장을 나오며 뉴스에서 연일 들려오는 갈등과 증오의 언어들을 떠올렸다. 누구도 졌다고 인정하지 않는 싸움, 상처만 남겨둔 채 이어지는 복수의 고리. 이순신이 그렇게나 집요하게 ‘완전한 항복’과 ‘철저한 마무리’를 외친 이유가 문득 이해됐다. 적을 남겨두면 훗날 더 큰 전쟁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그는 이미 봤던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영웅의 그림자’ 역시 솔직하게 보여준다. 승리의 환호 뒤에서 끝내 자신을 태워야만 했던 장군, 그리고 그의 곁에서 목숨을 걸었던 이름 없는 병사들. 묵직한 북소리가 여전히 귓전에 맴도는 지금, 나는 고개를 들어 별빛이 없는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화면 속 붉디붉은 새벽빛 대신, 빛공해 뒤편에 숨은 미약한 별 한 점을 찾으며 중얼거린다. ‘저 별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작에 멸망했을 거라고….’ 어쩌면 김한민 감독이 10년을 바쳐 완성한 삼부작은 거창한 대작이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하나의 북소리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책임 있게, 그리고 서로를 잊지 말자.’ 나는 그 메시지를 마음속 깊이 새긴 채, 조금은 무거운 걸음으로 극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