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 물향기 품은 뿌리와 가족 서사

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미나리 – 아메리칸 드림의 두 얼굴

1980년대 트럭 짐칸에 실려 아칸소 벌판으로 굴러 들어온 제이콥의 컨테이너 하우스는 ‘드림’이라는 단어가 품은 빛과 그림자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깃줄 끝에 기대어 선 낡은 보일러, 비닐로 대충 막아 놓은 창문, 바퀴 달린 바닥이 덜컹일 때마다 흔들리는 천장의 기우뚱함까지─그곳은 “성공하면 집부터 새로 짓자”는 희망과 “망하면 이마저 끌고 떠나자”는 불안이 동시에 깃든 임시의 둥지다. 제이콥은 “한국 채소만 잘 키우면 3만 가정의 밥상을 책임질 수 있다”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지만, 모니카의 눈엔 그 지도가 온통 ‘빨간 위험 표식’으로 반짝인다. 병아리 감별소에서 암컷과 수컷을 분리하듯, 미국은 부지불식간에 성공과 실패, 중심과 변두리를 구획 짓는다. 제이콥 가족은 그 경계선에서 한쪽 발을 들고 버티는 곡예사들 같다. 산파 역할을 자처한 폴이 십자가를 메고 주일마다 도로 위를 행진할 때, 그 우스꽝스러운 풍경은 “믿음만 있다면 뭐든 가능하다”는 미국적 낙관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하느님도 가난은 대신 벌어 주지 않는다”는 냉소를 들려준다. 그렇게 영화는 자본이란 물을 끌어오지 못하면 종잇장 같은 꿈은 쉽게 갈라지고 마른다는 사실, 그러나 한 번 뿌리내린 꿈은 쉽게 뽑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적어 넣으며 아메리칸 드림의 양면을 보여준다. 빛나는 농장 간판 뒤엔 빚 보증 각서가, 자유를 약속하는 별★줄무늬 끝엔 이방인의 서류 가방이 늘 매달려 있다는 것을, 미나리는 초록 잎 사이로 속삭인다.

미나리 – 이민자가 견뎌낸 가난과 자존심

컨테이너 벽에 매달린 한국산 고춧가루 자루는 이 가족의 통장 잔고이자 체면의 마지막 끈이다. 물만 자박자박 부어 두면 어디서든 발근하게 색이 오를 것 같지만, 현실의 생활비는 그렇게 쉽게 불어나지 않는다. 병아리 감별소에서 시급 몇 달러를 더 받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항문을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적 굴욕, 딸 앤이 학교 친구에게 “우리집은 바퀴 달린 집이야”라고 들킬까봐 주소를 숨겨야 하는 사회적 초라함, 심장병 아들 데이빗을 병원까지 한 시간 넘게 달려 가야 하는 의료 사각지대까지. 가난은 이민자에게 숫자 이상의 감정적 통증을 남긴다. 그럼에도 모니카는 고작 국그릇 하나, 속옷 한 장이라도 ‘깨끗하고 예쁘게’ 챙긴다. 자존심은 현금이 바닥나도 이상하게 고갈되지 않는 통장 같아서, 남몰래 긁어쓰고 또 긁어 써도 다시 잔액이 찍혀 있다. 제이콥이 우물 파는 도중 튀어나온 흙탕물을 두 손에 받아 “이 물이면 충분해!” 외치던 순간, 그의 손바닥엔 진흙뿐 아니라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투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폴에게 엑소시즘을 부탁하며 속으로는 “미친 짓”이라 중얼대도, 사실 그 의식이 실패를 기도로 바꿔 줄 마지막 안전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이 가족이 가난을 무릅쓰고 선택한 ‘농장’이 사실 선택지가 아닌 필사적인 대안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나리가 습지 한 켠에서 찬물에 잎을 씻어 내듯, 인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초라함조차 언젠가 누군가의 해장국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향’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일러준다.

미나리 – 가족이라는 뿌리의 힘

순자가 비회된 발걸음으로 개울가에 들어가 미나리 씨앗을 흩날리던 장면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가장 물기 어린 장면으로 번역해 낸 순간이었다. 손녀딸 앤은 “뱀 나온다”고 울상이었고, 데이빗은 “할머니는 이상해―쿠키도 안 만들고 냄새가 나잖아!”라며 토라졌지만, 곰팡내 밴 멜빵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작은 봉지 안에는 ‘어디서든 살 수 있다’는 흙내음이 들어 있었다. 미국 땅 한가운데 심긴 한국 사투리, 새벽마다 퍼지는 된장국 냄새, 무릎에 놓인 성경책 대신 틀어 둔 고스톱 판소리까지. 할머니는 미국식 ‘그랜마’의 규격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손주들을 품었다. 그리고 그 비표준적 사랑이야말로, 이 가족을 뽑히지 않는 뿌리로 엮어 준 접목선(接木線)이다. 불길이 헛간과 농작물을 삼켜 버린 밤, 제이콥은 재투성이 속에서 모니카의 손을 처음으로 꽉 붙든다. 꿈이 잿더미가 되어 날아가는 사이, 남은 것은 결국 서로의 체온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데이빗은 그 밤에 몰래 할머니의 팔을 잡고 울먹이며 속삭인다. “집에 가지 말고 우리랑 있어 줘요.” 뿌리가 땅 아래에서 얽혀 있듯, 가족은 겉으론 따로 서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영화는 그 얽힘을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심부름 가던 아이가 문득 뒤돌아보는 시선, 잠든 배우자를 위해 발치에 놓은 온수주머니 같은 미세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돋아난 미나리 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가족 실루엣은 말한다. “우리의 토양은 서로다.”

미나리 – 부모님 감사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나는 새벽 버스 안에서 맞물린 부모님의 두 손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빛바랜 난방비 고지서를 사이에 두고 “다음 달엔 좀 나아지겠지”라며 서로를 토닥이던 그 장면이, 미나리 줄기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처럼 마음속에 맺혔다. 아버지가 보여 주던 ‘쓸모있는 수컷’의 근엄함, 어머니가 숨겨 두었던 ‘무너지지 않는 기둥’의 단단함, 그리고 할머니가 내 도시락 반찬에 살며시 올려 주던 들깻잎 한 장의 향기까지. 영화 속 가족의 대사 한 줄, 숨소리 한 컷이 과거의 내 기억을 호출해 광활한 극장 천장에 비췄다. 나는 내가 떠나고 싶어 하던 고향을 결국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미나리를 닮아 자라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막차가 멈춘 정류장에서 나는 휴대전화 메신저를 열었다. “엄마, 저녁에 미나리 된장찌개 어때요?”라는 서툰 문장을 보내고는, 초록색 체크 표시가 파랗게 변할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답장은 단순했다. “좋지. 파 좀 사 올래?” 아주 평범한 이 한 문장이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 밖 어둠에 비친 내 얼굴은 분명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 영화 한 편이, 그리고 한 그루 미나리가 내 안의 잊힌 뿌리를 다시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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