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죽음을 마주한 첫날의 충격
다이고가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들이마신 공기는 그리움의 냄새가 아니라 시신이 남긴 냉랭한 냄새였다. 파격 채용이라는 말에 혹해 찾아간 사무실은 온통 기이한 고요로 가득했고, “여행 가이드”라는 두 글자 뒤에 숨어 있던 진짜 업무—납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화면 속 다이고와 함께 숨을 삼켰다. 처음 만져보는 차디찬 살갗, 고무장갑 안에서 미끄러지는 땀, 귓전을 때리는 사장의 거친 호통이 뒤엉켜 한순간에 몰려드는 공포.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다이고가 토악질을 삼키던 장면에서, 나는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영화가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는지 깨달았다. 세상의 끝이라 여겼던 냄새가 손끝에 박히고, 버스 좌석에 앉아도 코끝을 맴돌 때 다이고는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흘린 눈물 한 방울은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성인의 통과 의례’처럼 보인다. 나 또한 그 절망 속에서희미하게 싸늘한 체온을 품에 안고, 삶과 죽음이 맞닿은 경계를 처음 손으로 더듬는 기분이었다. 다이고의 첫날은 추락이 아니라 추락 끝에서 반짝인 작은 빛의 발견이고, 그 빛은 앞으로 그가 걸어갈 여정을 미리 비추는 듯했다.
굿바이: 고향이 건네는 조용한 위로
도쿄의 빛나는 콘서트홀 대신 야마가타의 설산이 보이는 개천가가 배경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생계를 위해 첼로를 손에서 놓았지만, 다이고가 고향 목욕탕에서 거품을 산처럼 쌓아 올리며 악취를 씻어내던 장면은 ‘정화(淨化)’라는 단어 자체였다. 고향집 다다미 냄새, 어린 시절 돌멩이로 눌러 두었던 악보, 어머니가 남긴 따뜻한 밥 냄새가 뒤섞여 서서히 다이고의 귓가에 첼로 선율을 되살린다. 우리는 어쩌다 삶이 버겁다고 느낄 때, 고향이 내미는 익숙한 냄새와 촉감 속에서 이유 없는 위로를 받는다. 영화가 보여준 고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좌절을 껴안는 거대한 포옹이었다. 날카로운 도시의 한기(寒氣)를 벗겨 낸 뒤 다이고를 부드럽게 감싼 그 온기로 인해, 관객인 나 또한 한겨울 이불 속에 파묻힌 듯한 안도감을 느낀다. 연어가 흙탕물을 가르며 상류로 오르듯, 다이고는 고향이라는 물길에서 천천히 생기를 찾아간다. 그 여정의 첫걸음은 첼로의 꿈이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조용한 증명이었다.
굿바이: 사명감이 꽃피는 순간
첫 장례식에서 상주가 건넨 도시락 한 상자는 다이고에게 ‘돈’ 이상의 의미였다. 피곤과 악취로 얼룩진 하루의 끝에 건네받은 따뜻한 밥알에서 그는 납관이라는 일이 고인과 남은 자를 잇는 다리임을 체감한다. 두 손으로 시신의 얼굴을 매만질 때마다 살아 있을 때의 미소가 어렴풋이 돌아오고, 유족은 마지막 인사를 담아 “고마워요”를 속삭인다. 그 짧고도 묵직한 한마디가 다이고의 주저함을 녹이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평범한 문장이 체온을 얻어 눈앞에 선다. 사장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는 죽음 앞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장인(匠人)의 뚝심이 숨 쉬고, 다이고는 그 숨결을 이어받아 ‘일’을 ‘일상’이 아니라 ‘사명’으로 키워 낸다. 고인과 마지막 눈맞춤을 할 때마다 첼로의 공명(共鳴)처럼 마음속 현이 진동하고, 그는 자신이 연주하던 음악이 사실은 ‘사람의 존엄’을 위한 예행연습이었음을 깨닫는다. 납관사의 손끝에서 핀 사명감은, 연어가 먼 바다를 돌고 돌아 알을 품듯 고되고도 숭고했다.
굿바이: 내 삶을 되돌아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흐르자, 나는 관객석에 앉아 있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성공을 증명하려고 악보처럼 빼곡한 계획을 세우고, 작은 실수를 만나면 마치 연주가 엉킨 듯 당황하던 나날들. 하지만 영화는 한 인간이 좌절 끝에서 납관사라는 초라해 보이는 직업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존엄이라는 거대한 악장을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삶은 거창한 팡파르가 아니라, 마주한 현실을 정직하게 손으로 만질 때 비로소 울림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이고의 첼로 선율이 고요한 강바람에 실려 귀를 간질일 때, 나는 내 안의 작은 겁쟁이가 속삭이던 “너는 결국 해내지 못할 거야”라는 음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뿌리를 버티고 서 있으면, 언젠가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그 봄이 지금 당장 오지 않더라도, 고향 같은 기억 속에서 마음을 씻고 사명의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면, 우리도 다이고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따뜻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