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운명과 회의의 불협화음과 교향곡

영화 500일의 썸머 포스터
영화 500일의 썸머 포스터

500일의 썸머 – 운명을 오해한 남자와 회의론자 여자

톰은 스무 살 무렵 우연히 본 영화 졸업에서 ‘한순간 눈이 마주치면 운명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주워 담고, 그 뒤로 모든 연애를 운명론의 퍼즐로 이해하려 들었다. 그에게 사랑은 열심히 쟁취하는 목표가 아니라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쿠폰 같은 것이었다. 반대로 썸머는 부모님의 이혼 서류가 조용히 책상 위에 올라오는 순간을 보며 자랐다. 전구가 꺼지듯 갑자기 식어 버리는 감정에 익숙해졌고, ‘정말 사랑이라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더 큰 농담으로 들렸다. 이 극단적인 두 개의 세계관이 같은 사무실 복사기 앞에서 충돌했을 때, 그 불꽃은 뜨겁다기보다 묘하게 차가웠다. 썸머가 스미스 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며 “나도 이 노래 좋아해요”라고 인사를 건넸던 그날, 톰의 머릿속엔 즉시 ‘퍼즐 완성!’이란 팝업이 떴지만, 썸머에게 그 말은 단지 “취향이 비슷하네요, 그러니 방어막 좀 내려 주실래요?” 정도의 열쇠였다. 두 사람은 똑같이 ‘우연’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톰에게 우연은 필연으로 굳어지는 매직이고, 썸머에게 우연은 오늘 입은 원피스 색깔만큼 가벼운 바람이었다. 이 간극을 모른 채 톰은 매 순간 썸머의 반응을 퍼즐 조각처럼 맞추기 시작했고, 썸머는 톰이 보여 주는 순수한 호기심을 ‘재밌는 동네 구경’ 정도로 받아들였다. 톰이 던진 “우리, 운명인가 봐요”라는 농담이 썸머에게는 “아, 또 사랑 타령인가”로 들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서 웃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부터 엇갈린 시선은, 마치 동일한 악보를 서로 다른 조(調)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작은 불협화음을 낳았고, 그건 결국 어느 날 퍽 하고 터질 수밖에 없었다.

500일의 썸머 – ‘사랑이 아니다’라는 선언의 의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아요.” 썸머가 회식 자리에서 이 말을 꺼냈을 때,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톰은 속으로 ‘곧 내 손에 반짝이는 증거를 쥐여 줄 텐데’라며 미소를 삼켰다. 하지만 그 단호한 한 문장은 썸머가 스스로 세운 안전 울타리이자, 상대가 넘지 않기를 바라는 경계석이었다. 그녀에게 ‘사랑이 아니다’란 곧 ‘책임과 영속성을 강제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럼에도 썸머는 톰에게 키스했고, 톰의 방에서 스미스 레코드를 뒤적이다가 한밤중에 떠들썩하게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톰은 그 키스와 웃음이 ‘사랑 부정 선언’을 무효화했다고 생각했지만, 썸머에게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기분이 좋아서”라는 단순한 감각의 표현이었다. 그녀가 말한 ‘아니오’는 미래를 향한 부정이지 현재형의 열정을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톰은 진심을 ‘언젠가 찾아올 영원성’으로 오해했고, 썸머는 진심을 ‘지금 내 심장이 뛰는 속도’로 정의했으니, 둘은 애초에 다른 사전을 쓰는 셈이었다. 결국 이 선언은 톰에게 숙제로 남았다. “왜 그녀는 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그는 답을 찾으려 애쓰는 대신, 선언 자체를 지워 버리려 했다. 하지만 선언은 스티커처럼 떼어지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접착제가 더 강해졌다. 썸머가 이별을 통보할 때 꺼낸 단어는 의외로 ‘불행’도 ‘지겨움’도 아닌 “우리, 싸우기만 하잖아”였다. 싸움의 본질은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해석 불일치였고, 그 불일치가 반복될수록 썸머는 첫 선언을 떠올렸다. ‘사랑이 아니라니까.’ 그 한마디를 톰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아마 두 사람은 더 일찍 서로를 놓아주었을지도 모른다.

500일의 썸머 – 이케아 데이트가 무너진 순간

두 사람의 관계 그래프를 그려 보면, 최고점은 이케아 데이트 장면에 찍힌다. 가짜 싱크대를 두드리며 “여보, 수도 고쳐 줘요”라고 장난치는 썸머에게 톰은 소년처럼 환히 웃었고, 톰 역시 “우리 미래 아이들, 이 방 좋아하겠지?”라고 받아쳤다. 관객이 보기에 너무 완벽해 ‘어쩌면 꿈?’ 싶을 만큼 달콤한 시퀀스. 하지만 그 장면을 되돌려보면 미세한 금이 보인다. 썸머가 ‘진지한 관계는 싫다’고 슬쩍 못 박았을 때, 톰은 “뭐, 그래도 괜찮아”라며 무심한 듯 응수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렸다. 이케아 쇼룸은 결국 ‘완벽하게 세팅된 이상적 생활’의 모형이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미래를 리허설하고 있었다. 톰은 보이지 않는 조명 아래에서 프러포즈 예행연습을 했고, 썸머는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미로형 집’을 점검했다. 그래서 몇 달 뒤 둘이 다시 이케아를 찾았을 때, 톰만 낡은 대사를 반복하고 썸머가 건조하게 메뉴판을 뒤적였던 순간, 모형 집은 무너졌다. 플라스틱 수도꼭지에서 물 대신 침묵이 뚝뚝 떨어졌고, 그들이 앉아 있던 쇼파의 페브릭 결이 서늘하게 뒤집혔다. 썸머가 식탁 위에 놓인 스웨디시 미트볼을 아무렇지도 않게 썰며 “우리 싸움만 하잖아”라고 말했을 때, 톰은 그제야 이케아의 파란 노란 간판이 사실 ‘출구는 저쪽’이라는 표지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낭만의 셋업을 해체하며, ‘진짜 집을 짓기 전엔 모델룸에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의 가슴팍에 새겼다.

500일의 썸머 – 내 스무살이 생각난다

내 스무 살 여름도 톰과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운명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알아볼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믿음 덕분에,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쳤다. 그러다 보니 기억에 남는 건 제대로 시작조차 못 한 짝사랑들, 그리고 SNS 타임라인에 훑혀 지나가는 옛 이름들뿐이었다. 500일의 썸머를 처음 본 뒤, 나는 마음속 노트를 꺼내 내 지난 연애―혹은 연애라 부르기엔 모호했던 만남―들을 역순으로 적어 봤다. 놀랍게도 날짜가 뒤죽박죽이어도 감정의 고점과 저점은 영화 속 톰과 거의 비슷한 곡선을 그렸다. 중요한 깨달음은 이거였다. ‘운명’은 결과를 미리 예고해 주는 신호가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뒤늦게 붙는 라벨이라는 것. 썸머가 ‘사랑은 없어요’라고 말한 건 냉소가 아니라 연애의 불가해함을 솔직히 인정한 고백이었다. 반대로 나는 톰처럼 ‘있다’고만 믿으면서 정작 행동은 미뤄 두곤 했다. 그래서 요즘은 방식을 바꿨다. 누군가 마음에 들면 운명인지 아닌지부터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커피 한 잔을 먼저 제안하고, 대화가 즐거우면 다음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오늘을 포개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 운명 같네”라고 웃을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이 영화가 준 가장 큰 선물은 결국 ‘선언보다 선택’이라는 간단한 진리였다. 그리고 선택을 할 용기가 생긴 지금, 내 삶의 계절은 썸머를 지나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계절을 향해 천천히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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