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러브 – 뉴욕 열차가 건네준 설렘

폴링 인 러브 포스터
폴링 인 러브 포스터

폴링 인 러브, 출근 열차에서 시작된 운명

뉴욕 교외선(메트로-노스)의 차창엔 늘 같은 풍경이 지나가지만, 딱 한 번 눈길을 바꿔 놓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 풍경은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영화 속 프랭크와 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침, 서점 ‘리졸리’에서 서로의 선물 꾸러미를 맞바꿔 들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떠밀리듯 플랫폼으로 향한다. 며칠 뒤 같은 시간, 같은 칸, 같은 좌석열에서 두 사람은 “어디서 본 듯한데…” 하는 낯익음 속에 어색한 미소를 건네고, 그 짧은 인사는 통근 노선 전체를 낯설고 설레는 실험실로 변모시킨다. 출퇴근은 대개 반복‧무감각‧생존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지지만, 타인의 손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온 책 한 권이 그 리듬을 교란한다. 프랭크는 서둘러 내리려다 문간에 잠시 멈춰 몰리에게 “혹시 다음 금요일에도 이 기차 타세요?”라고 묻는다. 회의 시작 시간을 고려해 늘 7시 47분 열차를 타던 그는 그날 이후 7시 32분·7시 54분 열차까지 번갈아 시도하고, 몰리는 출근 루트 역시 병문안을 이유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작은 ‘시간표 오류’를 슬로 모션도, 대사 과잉도 없이 스친 시선·종이컵 커피·서류 가방 스트랩 같은 소재로만 보여준다. 시청자는 프랭크가 개찰구를 통과할 때 흘깃 확인하는 회차 시계를 따라가며 자신이 놓친 기적의 확률을 재계산한다. 사실 기차 안에서의 첫 대화는 “메리 크리스마스” “책이 바뀐 것 같아요” 정도가 전부였지만, 공간은 이미 둘만의 밀실이 된다. 열차 승무원이 “티켓 확인합니다!”라고 외치고 지나가는 짧은 공백조차 두 사람에겐 무대 전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이후 카페에서 공유한 커피 향, 병실 복도에서 겹쳐 밟은 왁스 냄새, 도심 공사 현장에서 울린 해머 소리까지 모든 일상이 얇은 피부처럼 서로에게 접착된다. 우리는 그 피부를 통해 “폴링(falling)”이라는 동사가 가진 물리적 중력을 실감한다. 사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출근길 틈새에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나친 우연의 잔잇살에서 조용히 스며드는 것임을, 영화는 거창한 고백 대신 전동차 진동과 겨울 코트 깃새움으로 들려준다.

폴링 인 러브, 로버트 드 니로·메릴 스트립의 금지된 설렘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이미 ‘도덕’과 ‘응원’ 사이에서 심장이 이단 박동을 친다. 로버트 드 니로는 <택시 드라이버>나 <대부 2>의 강렬한 그림자를 잠시 내려놓고, 아내와 아들 둘을 챙기며 속마음은 들키지 못해 안달 난 “착한 남자” 프랭크를 연기한다. 연장통 같은 손으로 재킷 호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전화번호 메모를 찾는 장면에서는, 스크린에 잡힌 손가락 한 마디까지 어색함과 간절함이 공존한다. 메릴 스트립의 몰리는 반짝이는 눈동자 뒤에 유산 경험이 남긴 공허를 숨긴 채, 의료계 남편과의 안정된 결혼 생활 속에서 내리막 없는 ‘잔잔한 슬픔’을 견뎌 왔다. 그녀가 카페 테이블 위 죄책감 섞인 손짓으로 “우린 아무 일도 안 했잖아요”라고 말할 때, 목소리는 포근하지만 손등 혈관은 긴장으로 도드라진다. 둘의 케미스트리는 불꽃이라기보다는 ‘은근한 발열’에 가깝다. 대낮에도 보풀 낀 니트처럼 따뜻하지만, 건드리면 잔열이 오래 남는다. 특히 책이 뒤바뀐 사실을 확인한 날, 프랭크가 “우린 그저 밥을 먹을 뿐이에요”라고 설득하자 몰리가 살짝 웃으며 “마침 밥은 먹어야 하니까요”라고 답할 때, 두 배우는 불륜을 합리화하는 대신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의 얼굴을 선보인다. 눈빛은 향수처럼 천천히 퍼지고, 손끝은 작은 불안으로 떨리며,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거기엔 음흉한 계산도, 화려한 유혹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로의 고독과 외로움을 반사한 결과물, 다시 말해 ‘착한 사람들도 걸려드는 감정의 실험’이다. 하비 케이틀·다이앤 위스트가 친구로 등장해 “사랑에 빠졌냐”고 장난 섞인 추궁을 할 때, 드 니로는 불안한 미소로 고개를 저어 보지만 눈두덩이의 근육이 진실을 폭로한다. 마치 “경계선을 한 번 넘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발목이 이미 기울어져 있는” 표정. 그 서스펜스는 총성과 분노가 아닌, 서로를 바라보는 떨림만으로 구축된다. 결국 불륜의 윤리적 무게는 두 배우의 얼굴에 새겨진 ‘죄스러운 희열’과 ‘멈출 수 없는 끌림’을 통해 관객에게 그대로 전가되며, 우리는 불가항력과 책임 사이에서 쉬 사라지지 않는 울림을 얻는다.

폴링 인 러브, 1980년대 뉴욕의 현실 로맨스

1984년의 뉴욕은 화려함보다는 회색빛 실용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레이건 경기부양이 막 가속을 붙이던 시절이지만,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소시민의 시선은 늘 야근과 대출 상환표, 그리고 “맨해튼 일자리 vs 교외 주택”의 저울질에 묶여 있다. 영화는 이런 배경을 의도적으로 ‘장식’ 대신 ‘생활’로 그린다. 프랭크가 근무하는 건설 현장은 철골음이 메트로노스 열차 소음과 리듬을 맞추고, 몰리가 다니는 건축 사무실은 후줄근한 파일더미와 새로 들인 애플 II 컴퓨터가 뒤섞인 잡음으로 가득하다. 원색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42번가도, 택시 경적이 끊이지 않는 파크 애비뉴도 촬영 렌즈에선 마치 회색 재킷 같은 톤으로 눌려 있다. 이 공간들은 “불륜을 미화”하기보다는 “불륜이 틈입한 일상”을 강조한다. 데이브 그루신의 재즈 피아노는 그런 삭막함에 미묘한 온기를 들여놓는다. 은은한 일렉트릭 피아노 리프는 눈발이 흩날리는 터미널 앞에서 두 사람이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웃는 장면에 겹칠 때, 뉴욕의 겨울이 단순한 추위가 아닌 ‘사랑을 숨기기에 적당한 가림막’이 된다. 게다가 촬영감독 피터 서스츠키는 번쩍이는 로맨틱 라이트 대신 초저녁 형광등빛으로 둘의 얼굴을 비춘다. 덕분에 우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 = 아름답게 조명되는 사람”이라는 영화적 규칙 대신, “사랑에 빠져도 현실은 퇴근길 형광등 같다”는 메시지를 시청각으로 체득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회식 술집, 사무실 복합기 앞, 주차장 아스팔트까지 모든 장소가 ‘데이트 장소’로 변하는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의 도시에서도 이런 광경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1980년대 뉴욕의 로맨스는 사실 누구나 사는 도시의 어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달라진 것은 스마트폰과 이메일뿐, 여전히 사람들은 서점에서 선물을 고르고, 약속 시간에 늦어 숨이 찬 채 계단을 뛰어오르며, 벤치에 앉아 일과 가정을 동시에 고민한다. 그래서 <폴링 인 러브>는 레트로 캘린더가 아니라, ‘오늘 아침 지하철’에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현실 로맨스다.

폴링 인 러브, 작은 오차

영화를 끝내고 크레딧 음악이 조용히 잦아들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스토리도 배우도 아닌 ‘생의 작은 오차’였다. 나는 매일 같은 출근길에서 몇 차례나 “오늘 왜 하필 이 시간, 이 칸에 탔을까?”를 생각하며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봤던가. 혹시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도, 사랑이든 우정이든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을 건네려다 주저했을지 모른다. <폴링 인 러브>는 그 가능성을 눈앞에 데려다 놓고 “너라면 어떻게 할래?” 하고 미소 짓는다. 동시에 영화는 결코 ‘달콤한 불륜 찬가’로 끝나지 않는다. 프랭크가 아내에게 진실을 고백하려고 입술을 떼다가 결국 침묵으로 돌아서는 순간, 몰리가 남편을 떠안은 채 잠든 밤 침대 모서리에 앉아 숨소리를 죽이는 순간—우리는 사랑이란 말이 설렘과 죄책감, 책임과 자유를 모두 한데 묶은 복합어임을 재확인한다. 나 역시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마음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로, 동시에 이해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고 보니 ‘폴링(falling)’이란 단어에는 넘어질 수도, 날 수도 있다는 양면이 공존한다. 이 영화를 본 뒤부터 나는 출근 열차에 올라 창밖을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쯤 더 바라본다. 그 눈길이 사랑으로 이어질 확률은 거의 없겠지만, 적어도 ‘바쁘다’는 이유로 닫았던 감정의 창문을 살짝 여는 데는 도움이 된다. 어쩌면 그 틈으로 들어온 겨울 바람이 “사는 건 여전히 설렐 수 있다”는 작은 약속을 속삭여 줄 테니까. 우리 모두가 언젠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용기를 얻었다면, 두 배우가 기차 칸에서 나눴던 그 소심한 눈인사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적 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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