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코 – 죽은 자의 날이 전하는 따뜻한 기적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이란 단어가 처음엔 으스스한 해골 그림으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영화 〈코코〉 속 망자의 날은 공포가 아니라 눈부신 축제다. 금잔화 꽃잎이 흩날리는 다리 위를 형형색색 해골들이 웃으며 건너가고, 환상 동물 알레브리헤들은 네온사인처럼 빛난다. 멕시코의 전통과 픽사의 상상력이 맞닿는 그 한순간, 관객은 “죽음=끝”이라는 공식이 뒤집히는 짜릿함을 맛본다. 산 자들은 제단에 사진과 음식, 기억을 올려 놓고, 저편의 영혼들은 ‘그리움’이라는 통행권을 들고 찾아온다. 이 상호작용이 돌돌 말린 금잔화 잎처럼 겹겹이 따뜻하다. 더 놀라운 건 이 날이 단 하루뿐이란 사실이다. 단 하루를 위해 1년 내내 기억하고, 추억을 수선하고, 사진을 닦아 두는 가족들. 이 집요한 사랑 덕분에 코코 할머니처럼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이들도 마지막 불씨를 지켜 낼 수 있다. 그래서 망자의 날은 단순한 민속 이벤트가 아니다.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떠난 뒤 기억해 주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선물하는 거대한 의식이다. 나는 극장 좌석에 앉아 ‘내 제단’엔 누구의 사진을 올려야 할지, 그리고 그 사진이 먼지 쌓여 흐릿해지지 않으려면 어떤 이야기를 남겨야 할지,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코코 – 음악을 금지한 집안의 비밀
가족에게 음악이 금기라는 설정은 처음엔 과장된 코미디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리베라 가(家)의 금기는 몇 마디 잔소리로 만들어진 간편한 규칙이 아니다. 증조할머니 이멜다가 남편의 기타 소리에 홀려 가업을 버리고 떠난 ‘상처’ 위에 얹힌 단단한 굳은살이다. 그녀는 음악이 곧 배신이라 믿고 가죽처럼 질긴 규율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씌운다. 신발 제작소에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는 기타의 현 대신 가족을 지키는 방패다. 어린 미구엘이 다락방에서 몰래 기타를 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아프다. 금지된 열정은 언제나 더 크게 불타오른다. 미구엘이 운명처럼 만난 델라크루즈의 영상 속 화려한 무대는 해묵은 금기를 단칼에 끊어 줄 ‘신비한 열쇠’ 같았지만, 그 열쇠는 결국 거짓말과 배신으로 주조된 가짜 황금이었다. 집안을 짓누르던 금기의 뿌리는 실은 ‘음악’이 아니라 ‘오해’였음을 깨닫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드라마다. 이 비밀이 풀릴 때, 금기는 규범에서 해방으로, 상처는 화해로 전환된다. 관객인 나 역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워했던 그 습관, 혹은 사람이 사실은 오해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영화는 편견이라는 문장을 살짝 비틀어, 그 뒤에 가려진 진짜 사연을 들여다보라고 속삭인다.
코코 – ‘Remember Me’가 남긴 눈물의 의미
영화관 조명이 켜질 즈음, 코끝을 간질이는 멜로디 하나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Remember me~♪”로 시작되는 그 짧은 노래는 극 중에서 두 가지 얼굴을 지닌다. 세상 사람들이 아는 버전은 델라크루즈가 성대하게 부르는 화려한 세레나데지만, 헥터가 코코에게 속삭이듯 불러 주던 원곡은 자장가에 가깝다. 같은 멜로디, 다른 온도. 한 곡 안에 ‘사랑’과 ‘배신’, ‘추억’과 ‘야망’이 겹겹이 포개진다. 그런데 기적은 바로 그 겹침에서 일어난다. 치매로 거의 모든 기억이 지워진 코코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실 한 가닥이 바로 아빠의 목소리였다. 미구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부르는 순간, 할머니의 탁한 눈동자에 파도가 일렁이고, 잃어버린 시간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장면에서 관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임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참았던 눈물이 광대 근처를 적셨다. 결국 ‘Remember Me’는 제목 그 자체로 영화의 테제다. 기억해 달라는 요청은 사랑의 가장 단순하고도 절실한 형태다. 거창한 영웅담이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잊지 말아 줘”라는 한 문장. 그 소박한 문장이 누군가의 생을 구원한다. 상영관을 나서며 나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적였다. 오래 연락 못 한 친구,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견,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Remember me”가 귓가에서 맴도는 동안, 그들의 이름을 가만히 속으로 불러 보았다.
코코 – 기억을 이야기하다
상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가슴께에 파도가 살살 스미듯, 금잔화 꽃잎이 스크린 너머에서 계속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영화는 내게 두 가지 주문을 걸었다. 하나는 “잊지 말기”, 다른 하나는 “들려주기”.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는 일은 먼지가 내려앉은 사진을 부드럽게 닦아 내는 작은 손길에서 시작되고, 기억을 들려주는 일은 삑사리가 나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용기에서 완성된다.엔딩 크레디트가 흐르는 동안, 나는 극장 천장에 어른거리는 금빛과 주홍빛 잔상을 따라가며 마음속으로 작은 제단을 세웠다. 문득, 스마트폰 앨범 깊숙이 잠들어 있는 가족 사진을 꺼내어 클라우드 어딘가에만 맡겨 두지 말고 거실 벽 한 칸을 진짜 ‘오프렌다’처럼 꾸며 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화려한 금잔화 대신 마트에서 산 해바라기를 놓고, 옆에 손바닥만 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두어 여행 중 녹음해 둔 파도 소리를 슬며시 틀어 두면 어떨까.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파도와 해바라기와 오래된 사진이 한꺼번에 “어서 와” 하고 속삭여 준다면, 그 집은 더 이상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숨 쉬는 작은 우주가 될 것이다.영화 속 미구엘이 흑백사진에서 튀어나와 기타 한 줄을 퉁기듯, 우리 기억도 제단 위에서 깜박이며 색을 되찾을지 모른다. 나무 틀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외할아버지의 웃음, 생일마다 두 팔 가득 안겨 주던 작은 케이크 상자, 길 위에서 들려오던 ‘Recuerdame’의 기타 선율이 순식간에 살아나 “오늘도 기억해 줘서 고마워” 하고 인사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 있는 기억’을 집 안 곳곳에 배치한다면, 먼 훗날 나 역시 누군가의 제단 위에서 웃으며 기타를 튕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코코〉**는 죽음이 아닌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억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식을 들려준다. “당신의 목소리로, 당신의 이야기로, 오늘 사랑을 노래하라.”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다리는 대단한 건축물이 아니라, 하루하루 던지는 짧은 안부와 떨리는 노랫소리, 그리고 눈길 한번 더 건네는 애정으로 세워진다. 스크롤을 멈추고 지금 바로 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 보자. “너를 기억해.” 그 한 줄이면 금잔화 다리는 이미 반쯤 놓였다. 그리고 내일 다시, 또 한 줌의 꽃잎을 흩뿌리며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이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