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 – 심해왕국의 장엄한 초대장

아쿠아맨 포스터
아쿠아맨 포스터

아쿠아맨, 심해 왕국의 장엄한 미장센

아틀란티스 초입에서 비늘처럼 반짝이는 주홍 산호 군락이 시야를 뒤덮는 순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숨을 삼켰다. 물속이라는 물리 법칙이 무색할 만큼 선명한 색채와 빛의 질감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제임스 완은 암청색 깊이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 편의 회화처럼 다룬다. 고래의 유려한 곡선이 도시의 곡선형 건축과 겹쳐질 때마다 바다가 곧 하늘이고, 물거품이 곧 성운이라는 착시가 일어난다. 특히 초대 왕 아틀란의 홀로그램이 반투명 물결 위에 펼쳐질 때, 화면은 순간적으로 르네상스 시대 교회 천장을 연상시키는 경건함까지 띠는데, 이때 들려오는 잔잔한 합창은 물기 어린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완성한다. 또한 ‘트렌치’를 비추는 구도에서는 광원이 없는 심해 속을 스스로 빛내는 형광 해파리가 공포조차도 아름답게 번역해, 괴물의 눈빛마저 동양화 속 먹빛처럼 번져 나간다. 거대한 갑옷 병기가 돌진할 때마다 날아오르는 모래와 조개껍데기 조각이 삼차원적으로 튀어 올라, 스크린 밖 관객의 뺨을 간질이는 듯한 착각을 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디테일들이 모여 아쿠아맨의 미장센은 심해가 아니라 ‘우주 바다’라는 거대 은유로 확장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극장 조명이 켜졌을 때조차 눈앞엔 여전히 아쿠아브리즈 같은 푸른 잔상이 어른거렸고, 내 귓가엔 소금기 가득한 파도 숨소리가 오래도록 귀에 맴돌았다.

아쿠아맨, 4DX·스크린X로 만나는 물폭탄 체험

상영관 의자를 처음 뒤흔든 건 블랙만타가 발사한 초음파 미사일이 아니라, 실제로 날아온 ‘물보라’였다. 4DX 노즐이 뿜어내는 미세 물방울이 관객석을 스쳐 지날 때, 나는 등대지기 토마스가 폭풍 속에서 여왕을 발견하던 그 새벽 해안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스크린X가 좌우 벽면까지 바다를 확장시키자,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등대 불빛이 삼면 스크린을 타고 관객 위로 휘돌아 갈 때 좌석 모션이 파도처럼 들썩이고, 바 틀 속에서 상어 전차가 돌진할 때 등받이에 박힌 공기 샷이 늑골을 두드린다. 특히 ‘트렌치 급강하’ 시퀀스에서는 좌우 스크린이 동시에 암흑으로 꺼졌다 켜지며 수백만 트렌치 개체가 번갈아 튀어 오르는데, 순간 객석 전체가 거대한 다이버 케이지가 된 듯한 공포가 엄습한다. 그리고 클imax 전투에서 붉은 갑각 드럼이 울릴 때, 모션체어는 북채처럼 연속 진동을 줘 전쟁의 맥박을 몸으로 새기게 한다. 끝내 초대 삼지창가 번개를 휘두르는 마지막 컷이 터지자 스크린X는 화이트아웃과 함께 벽면까지 금빛 스파크로 물들이고, 천장 송풍구가 동시에 시원한 해풍을 뿜어내어 진짜 심해 갈라짐을 체감하게 만든다. 영화관을 나서며 마스크를 벗었을 때 코끝에 짭조름한 냄새가 붙어 있던 건, 아마 실제로 바닷물이 뿌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4DX와 스크린X가 합작해 만들어 낸 ‘촉각적 착시’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아쿠아맨, DC가 찾은 밝고 통쾌한 유머

DC 영화라 하면 어둡고 비장한 색조, 돌덩이 같은 중후함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아쿠아맨은 첫 등장부터 “저기요, 물은 제 전문입니다”라고 윙크하듯 농을 던지며 기존 이미지를 물밑으로 가라앉힌다. 아서 커리는 등대 막걸리를 꿀꺽 삼키고도 셀카 요청에 기꺼이 ‘샤카’ 포즈를 지어 주는, 천상 술집 베스트 프렌드 같은 히어로다. 기껏 힘줘 엄숙히 올라탄 괴수마저 그의 한 줄 농담에 개그 캐릭터가 되고, 동생 옴의 거창한 선전포고는 관객석에서 “갑자기 연극 톤이네?”란 웃음으로 승화된다. 특히 블랙만타가 아틀란티스 기술을 뜯어고치며 아이언맨식 ‘몬타주 봉합’을 할 때,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하이텐션 EDM은 흡사 ‘과몰입 금지’라는 제작진의 장난스러운 주석처럼 들린다. 이런 유머는 대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메라가 와인 가게 수조를 통째로 휘감아 적을 제압하는 장면에서, 붉은 와인이 폭죽처럼 터지고 바닥에 널린 병들이 마치 만화 속 별표처럼 반짝이며 굴러가는데, 그 자체가 물리 엔진 개그다. 덕분에 관객은 거대한 신화적 서사를 ‘엄숙한 숙제’가 아닌, 주말에 즐기는 놀이공원 어트랙션처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마블은 못 주는 DC식 쾌활함’이라는 역설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쿠아맨의 유머는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직선적이면서도, 동시에 바다처럼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기에, 장면마다 터지는 웃음이 파도처럼 간헐적 리듬을 만들어 준다. 덕분에 러닝타임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도 팝콘 봉지는 반이나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이 영화가 얼마나 경쾌했는지를 증명한다.

아쿠아맨, 낯선 현기증

극장을 나오는 길, 나는 신도시 빌딩 숲 사이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낯선 현기증을 느꼈다. 현실의 도심은 아틀란티스처럼 형형색색 빛나지 않고, 길가 연못 물결은 스크린X만큼 웅장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어폰을 꽂자마자 영화 속 저음의 패드 신스가 다시 귓속을 뜨겁게 울렸고, 나는 문득 ‘물은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는다’는 진실을 떠올렸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관계, 예고 없이 몰려오는 사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심해 같은 불안. 아쿠아맨이 삼지창을 쥐고 외친 “나는 두 세계의 가교다”라는 선언은, 결국 나에게 ‘우리는 각자 여러 세계의 교차점에 서 있다’는 깨달음을 던졌다. 회사에서의 나, 가족 앞의 나, 꿈꾸는 나, 그 모두가 충돌하며 만들어 내는 파도가 바로 나라는 바다를 완성한다는 것. 그러니 동생 옴처럼 혈통이나 전통만을 붙들고 과거에 갇힐 필요도, 블랙만타처럼 복수의 앵글에 시야를 좁힐 필요도 없다. 물은 부딪히면 갈라지고, 막히면 길을 돌아 흐른다. 그러니 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는 주먹을 더 세게 움켜쥘 것이 아니라, 물처럼 유연해지면 된다는 것을, 이 영화가 스펙터클 속에 숨겨 놓은 철학으로 읽었다. 두 발은 여전히 육지에 붙어 있지만 마음속에는 푸른 흐름이 생겼다. 언젠가 다시 삶이 막막한 암흑 트렌치로 나를 끌어당기더라도, 나는 오늘 받은 물빛 용기를 기억하며 팔을 젓고 위로 떠오를 것이다. 마치 거대한 카라던의 등 위에서 삼지창을 번쩍 들고 수면 위로 돌진하던 아쿠아맨처럼, 세상에 한 줄기 소금기 어린 웃음을 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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