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쿨 오브 락 – 잭 블랙의 에너지 폭발
도입부에서 잭 블랙이 무대 위에서 껑충껑충 뛰며 기타 리프를 긁어대는 순간, 관객은 이미 영화가 선사하려는 두근거림의 파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얼굴엔 굵은 땀이 맺히고, 머리칼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세차게 흔들리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락스피릿’의 본질을 증명한다. 잭 블랙이 연기하는 듀이 핀은 실패와 무책임의 결정체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남들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열정의 알파’를 가슴 깊숙한 곳에 품고 있다. 그는 수업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모두 책 덮고, 소리 질러!”를 외친다. 그 구호는 교재 대신 앰프 전원을 켜라는 선언이며, 잔잔했던 교실 공기에 전자기적 전율을 주입하는 기폭제다. 잭 블랙 특유의 호흡이 섞인 빠른 대사, 과장된 제스처, 예측불가 애드리브는 기존 교사상―단정한 차림, 정돈된 어조, 교과과정 준수―을 모조리 전복한다.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관객은 깨닫는다. 교육의 핵심은 정보 전달이 아닌 에너지 전이이며, 잭 블랙의 분신 같은 듀이는 그 역할을 몸으로 입증해 보인다. 그가 무대 뒤에서 아이들을 독려할 때 뿜어내는 흥분의 기류는 스크린을 넘어 관람석에 앉은 우리에게도 번개처럼 튄다. 이처럼 잭 블랙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락 앤 롤의 고성능 배터리가 되어 영화 전체를 충전했다. 사람들이 “스쿨 오브 락을 보면 이상하게 용기가 난다”고 말할 때, 그 심리적 충전지를 제공하는 장본인이 바로 그 라인업 전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 듯한 잭 블랙의 에너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스쿨 오브 락 – 시험 대신 락스피릿 수업
명문 사립 호레이쇼 그린 초등학교의 하루는 원래 ‘프리알지브라 → 고급문법 → 예비SAT 어휘’처럼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듀이가 들어서자 교과 시간표는 ‘락 역사’, ‘솔로잉 실습’, ‘스테이지 프레즌스 연구’ 따위의 기상천외한 목차로 뒤바뀐다. 아이들은 처음엔 “이게 진짜 공부가 맞아요?”라고 의심하지만, 기타 피킹 방법을 배우며 코드 진행을 꿰뚫고, 드럼 스틱으로 4/4박을 쪼개며 리듬 감각을 체화하고, 베이스의 펑키한 그루브를 느끼며 수학적 분수를 신체로 이해한다. 시험지를 통해 딱딱하게 암기했던 지식이 앰프의 울림 속에서 알갱이째 스며들자, 아이들은 ‘배움’이란 단순히 머릿속 서랍에 정보를 넣는 작업이 아님을 깨닫는다. 여기서 샛별처럼 빛나는 요소가 바로 ‘팀 프로젝트’다. 듀이의 밴드 커리큘럼은 각 악기의 개별 역량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주, 사운드 밸런싱, 구호를 맞추는 순간마다 ‘우리’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다. 락 음악이 가진 집단적 환호와 에너지 교환 구조를 통해, 학생들은 점점 서로의 박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21세기 교육계가 목놓아 외치는 협업·의사소통·창의성을 자연스럽게 함유한 ‘메타 수업’이다. 듀이가 악보 대신 나눠주는 것은 “틀려도 괜찮다, 소리를 내봐라”라는 허가증이고, 그 허가증을 손에 쥔 아이들은 기존 평가 체계로는 가늠할 수 없는 몰입 상태―즉 ‘플로(flow)’―에 빠져든다. 시험 한 번에 찍히는 원점수보다 훨씬 깊은 성취감이 교실 바닥부터 사운드 웨이브처럼 퍼지면서, ‘공부=고통’이라는 오랜 등식을 산산이 부수는 장면이 완성된다.
스쿨 오브 락 – 아이들이 찾은 무대 위 자존감
초반부의 아이들은 정제된 교복 깃을 곧추세운 채, ‘정답’을 맞히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다. 반장 썸머는 과제 체크리스트가 제때 도장 찍히지 않으면 불안에 떨고, 내성적인 톰리카는 학교 오케스트라에서조차 작은 실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락 밴드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 그들은 처음으로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만난다. 어떤 사운드가 좋을지, 어떤 가사를 쓸지, 어떤 퍼포먼스로 관객을 사로잡을지―그 물음에는 오직 ‘스스로의 목소리’로만 답할 수 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자존감의 씨앗이다. 듀이는 연습실 벽에 적힌 무수한 락 스타들의 이름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사람들도 원래는 너희처럼 학교에 앉아 있던 꼬맹이였어.” 그 한마디가 아이들의 눈빛을 바꾼다. 의기소침했던 로렌은 백보컬 마이크를 잡으며 쨍한 고음을 내뿜고, “뚱뚱하니까 춤추면 놀림 받을까 봐” 걱정하던 프레디는 드럼 세트 뒤에서 상체를 번갈아 흔들며 리듬을 진두지휘한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는 시험 점수표가 절대 제공할 수 없는 체험―자신이 중심이 되는 세계―를 선물한다. 공연 당일, 관중석 맨 앞줄엔 그간 ‘성적표’만 믿어 왔던 부모들이 앉아 있다. 아이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늘 완벽만 요구하던 어른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외심으로 바뀐다. 그 장면은 자존감의 탄생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영화적 증거다. 무대가 끝난 뒤 아이들은 “우리가 꼭 1등 해야 해?”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로서 빛났어!”라고 나직이 속삭인다. 스포트라이트는 꺼졌지만, 그 내면 빛은 더 이상 꺼지지 않는다. 그것이 ‘락스피릿 수업’이 남긴 가장 값진 졸업장이다.
스쿨 오브 락 –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조앤 제트의 기타 리프가 극장 공기를 감싸 안자,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박자를 탔다. 하지만 머릿속을 가장 오래 맴도는 건 소음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단어였다. 학창 시절 나 역시 선생님이 알려 준 ‘정답’과 부모가 요구한 ‘안전한 길’만을 좇느라 내 안의 리듬을 미처 듣지 못했다. 스크린 속 아이들이 무대를 밟으며 환호를 들이켜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소년 시절의 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직 기타 한 줄 제대로 튕겨 본 적 없지만, “나도 언젠가 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영화관을 나와 귀갓길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스쿨 오브 락’이 던지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다. 단 한마디로 압축하면 “너의 볼륨을 네가 조절해라”이다. 사회는 언제나 우리 각자의 다이얼을 낮추라고 요청한다. 시끄럽다, 튄다, 실패한다…. 그러나 듀이와 아이들은 반대로 외친다. 더 키워라, 더 쏴라, 더 흔들어라. 그 울림에 감화된 나는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취미―낡은 미디 키보드로 만들던 조악한 곡―파일을 다시 열었다. 열정의 기준은 남이 정해 주지 않는다. 잭 블랙의 미친 듯한 에너지처럼, 내 안의 박자 역시 내 몸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떨려야만 진짜 나로 설 수 있다. 오늘 밤, 나는 오래 닫혀 있던 볼륨 노브를 시계 방향으로 살짝 돌려 본다. 스피커가 ‘지직’ 하고 잡음을 내도 괜찮다. 락은 원래, 잡음에서 태어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