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작전 – 레바논 속 숨막힌 질주의 밤

비공식작전 포스터
비공식작전 포스터

비공식작전 – 해병대 PX 방위병 외교관의 미션

이 영화가 제시하는 첫 관문은 “해병대 PX 방위병 출신 외교관”이라는 역설적인 직함이다. 대사관 담벼락 안에서 기밀문서를 다루기보다 PX 창고에서 컵라면 박스를 정리했을 법한 이민준(하정우)이 멀쩡하게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레바논 내전의 한복판으로 던져지는 순간, 관객은 이미 ‘평범함의 파괴력’을 깨닫는다. 그는 총 한 번 못 쏴보고 제대한 ‘방위병’이라는 자기 열등감을 은근슬쩍 숨기면서도, “외교관 수칙 제34조”를 들먹이며 대책 없이 돌진한다. 그 모습은 마치 좁은 PX 앞마당에서 ‘군용 얼음과자’ 빼먹다 들켜 우왕좌왕하던 병사가 군단장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양새와도 닮았다. 그러나 바로 그 어설픔이야말로 영화의 핵심 추진력이다. 민준은 늬앙스 한 끗을 놓치지 않으려 영어·아랍어·몸짓 언어를 뒤섞고, 심장이 “쿵” 하는 순간마다 가슴속에 엉겨 붙어 있던 PX 박카스 냄새를 떠올려 더 세차게 달린다. 그가 내세우는 무기는 해병대 깃발도, 외무고시 수석도 아닌 ‘동료가 쥐어준 암호 한 장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이다. 단독 히어로물이 아닌 팀 플레이 영화답게, 그의 우직함은 곧잘 주변 인물들의 스위치를 켠다. CIA 출신 카터는 “전쟁터에선 강철보다 뻔뻔함이 단단하다”는 말로 민준의 투박한 예의를 조롱했지만, 정작 자신이 포기했던 교섭 테이블을 다시 열어 젖힌 건 민준이 건넨 ‘김치찌개 같은 인간 냄새’였다. 주지훈의 김판수 또한 마찬가지다. “해외파 택시 운전사”라는 허름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민준의 두 눈에서 ‘미군 PX 앞 노점상 기세’를 읽어낸 덕에 생존 공동체를 결성한다. 즉, 이 영화는 대단한 초인적 능력 대신 ‘결핍’을 유머와 용기로 끓여내는 방식을 택한다. 덕분에 관객은 어느새 바싹 마른 입술로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중얼거리며 무심코 의자 끝으로 몸을 내민다. 평범함이 만든 공감대—이것이야말로 1987년 레바논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단숨에 친숙하게 바꿔 놓는 영화적 엔진이다.

비공식작전 – 300만 달러 몸값과 암호 한 통

실화의 뼈대를 이루는 300만 달러 몸값 거래는, 돈다발로 세상을 흔들 수 있을 거라 믿는 인간 욕망의 장부를 펼쳐 보인다. 화면 속 ‘쿠로코’ 가방에 차곡차곡 들어찬 달러 뭉치들은 무장단체, 시리아 군부, 현지 갱단, 심지어 수수께끼 브로커까지 저마다의 계산기를 두드리게 한다. 그런데 정작 이 거대한 흐름을 방향 지어 움직인 건, 복잡한 모스 부호도 아닌 ‘톡톡’ 두 번 두드린 국제전화 암호였다. 외교관 오재석이 마지막 기력으로 입력한 숫자 서열은 PX 방위병 출신 이민준의 손바닥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지도를 그린다. 이 지도가 흥미로운 지점은 “국가 간 힘겨루기”라는 거대담론을 벗겨 내면 ‘고장 난 계산기’ 같은 허점이 속속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레바논 정부는 내전 수렁에서 손발이 묶였고, 시리아 정보부는 이미 ‘자릿세’를 챙기기 위해 대로변에서 픽업 대기 중이며, 한국 정부는 “공식으론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 사이를 민준의 손때 묻은 공책 속 암호 16자리와 CIA 카터가 제시한 3단계 거래 프로토콜이 메운다. 특히 영화가 택한 ‘단계별 분할 지급’ 서사는, 몸값을 두고 엇갈린 기대와 불신을 3막 구조처럼 터뜨린다. 첫 번째 115만 달러 운반팀이 베이루트 국제공항에서 시리아 군인에게 삥을 뜯기는 순간, 관객은 ‘돈 냄새’가 이토록 빠르게 번질 수 있음을 실감한다. 두 번째 접선 지점에서는 아말 민병대의 총구가 돈다발보다 먼저 트렁크를 열어젖힌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지급 시퀀스에선 시원하게 빵빵 터지는 총성과 함께 “여기서부터는 돈보다 명분 싸움”이라는 대사가 날아든다. 그 명분은 의외로 소박하다. 말 한 마디 믿고 건넨 몸값 뒤에 숨은, ‘한국에 살아 돌아가 가족 밥상 앞에 다시 앉겠다’는 인질의 소망. 그러니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몸값 드라마는 거액·사파리·판타지가 아니라, “목숨 값은 환율보다, 기도보다 먼저 오르는 법”이라는 얄궂은 진실을 들이민다. 그리고 끝내 300만 달러가 모두 소진된 이후에도, 관객 가슴 한켠엔 ‘돈 주고도 사지 못한 시간’이 영수증처럼 구겨져 남는다.

비공식작전 – 하정우·주지훈 ‘저승 케미’ 폭발

전반부까지만 해도 민준과 판수는 “돈 때문에 얽힌 한철 동업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이루트 골목을 헤집는 추격전이 세 번, 포탄 파편이 몸을 스치는 고속도로 질주가 두 번, 시트 냄새조차 차가운 관용차 트렁크에 갇히는 밀실 서스펜스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두 사람의 케미는 ‘저승 동행’ 수준으로 진화한다. 타인의 언어와 종교, 무장 단체의 이권 구도를 전혀 모른 채 기차표도 없이 터널로 뛰어든 민준에게, 판수는 “이곳 루트엔 네비게이션 없으니 내 눈빛 따라와”라고 툭 내뱉는다. 그 순간부터 하정우의 얼굴엔 ‘해병대는 못 갔지만 해병혼은 있다’는 식의 독기와, 주지훈 특유의 ‘쌩초보 길안내자’가 뿜어내는 뻔뻔함이 기묘하게 맞물린다. 이 조합이 빛나는 장면은 단연 폐고속도로 택시 릴레이 신이다. 앞뒤로 무장 트럭이 번개처럼 끼어들고, 도로 옆 폐허 아파트에서 AK 총성이 메아리칠 때, 판수는 핸들과 사이드브레이크를 동시에 던지듯 당기며 “여긴 후진보다 역주행이 안전해!”라며 차량을 강제 드리프트시킨다. 그 순간 민준은 몸을 돌려 뒷좌석 가방을 끌어안고 외친다. “돈은 탱크보다 가벼워!”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웃는다. 죽음의 중량을 재다 지쳐버린 이들이 결국 움켜쥔 건 ‘목숨 걸린 농담’ 한 줄인 셈이다. 더욱 인상적인 건 액션 후반부의 인간 방패 장면이다. 탈출에 성공한 민준이 헬기 데크로 달려가는 판수에게 문서를 던지며 외친다. “형! 그냥 가면 한탕주의자 되고 나면 역사의 공범이야!” 판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총구를 향해 돌아서는데, 주지훈의 눈빛이 잠시 흔들린다. 소위 ‘국뽕’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두 사람의 선택을 **‘관계의 무게’**로 돌려놓는 연출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결국 판수가 돌아선 덕에 민준은 보호벽 뒤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난사를 퍼붓던 총성이 멈출 때 둘은 서로를 마주 본다. “왜 돌아왔냐”는 민준의 울음 섞인 질문에 판수는 툭 내뱉는다. “PX 방위병도 PX 손님 놓치면 깨지거든.” ──이 대사는 두 배우의 케미를 넘어, ‘국적도 계급도 뛰어넘는 동행’의 본질을 농담처럼 찌른다. 그리고 관객은 깨닫는다. 저승길도 둘이 걸으면 영화가 된다는 사실을.

비공식작전 – 내게도 필요한 작전

엔딩 크레딧 사이로 바다 반대편 모로코 사막 노을이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어쩐지 1987년 여름을 몰래 엿본 기분에 잠겼다. 영화는 화려한 카체이스와 폭발을 내세우지만, 정작 내 가슴을 오래 덮고 간 것은 “어쩌면 영웅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칼끝보다 먼저 웃을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우연”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극장을 나서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인생 지도 위에서 암호 한 번쯤 받지 않을까? 갑자기 ‘톡톡’ 두드려서, 여기 가보라 권하는 어떤 신호.” 친구는 씩 웃으며 “그때 너, PX 방위병 출신처럼 달릴 각오 돼 있냐?” 하고 물었다. 돌아오는 길, 서울 지하철 환승 통로에서 사람들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묘하게 ‘톡톡’ 암호처럼 들렸다. 언젠가 내게도 목숨 걸고 달려야 할 누군가의 암호가 오겠지. 그때 나는 겁부터 먹을까, 아니면 김판수처럼 “내 차 타!”를 외칠까. 영화는 답을 대신 말해 주지 않았다. 다만 바다 건너 황량한 노을 위에 “선택이 곧 국경선이 된다”는 문장을 슬쩍 새겨 두었다. 그래서 오늘 밤, 창문 너머 어둠을 바라보며 나만의 암호 묶음을 적어 둔다. 인연의 전화가 울리면, 해병 PX 대신 골목 슈퍼라도 뛰쳐나갈 수 있게. 그리고 하루쯤은 내게도 **‘비공식작전’**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작지만 단단한 예감 하나를 품고 잠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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