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 무대 위의 불멸 전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보헤미안 랩소디 – 운명이 된 첫 6분

보헤미안 랩소디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늘 커다란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를 상상하게 된다.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상과 가사를 끼워 맞추던 프레디와 멤버들은 “6분짜리 싱글은 미친 짓”이라는 음반사 간부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스튜디오 한복판에서 자신들이 미리 점찍어 둔 ‘운명의 6분’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다. 피아노가 첫 소절을 눌러 영혼의 문을 여는 순간, 오페라와 하드록과 발라드가 서로의 장르를 잡아끌어 한데 뒤엉키고, “갈릴레오!”를 외치며 솟구치는 팔세토는 전통 음악 이론서의 견고한 벽을 흠씬 깨뜨린다. 브라이언 메이는 이 장면을 “클래식이 전혀 다른 행성에서 날아온 록 밴드를 만나는 충돌 사고”라고 표현했다. ‘길다’ ‘라디오에서 못 튼다’ ‘대중적 흐름을 거스른다’—숱한 경고가 쏟아졌지만, 프레디는 발뒤꿈치를 들썩이며 “우리가 들려주고 싶은 건 시간으로 잴 수 있는 노래가 아니야. 우리는 한 곡 안에 세상을 통째로 집어넣을 거야”라고 말한다. 결국 EMI를 설득하지 못한 네 사람은 아침이슬처럼 투명한 그 운명을 디제이 케니 에버렛에게 몰래 건네고, 그는 “친구들, 완전히 미쳤다!”라며 6분짜리 괴물을 전파로 실어 나른다. 1975년 10월, 영국 전역이 바이럴이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바이럴에 감염된 셈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첫날,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우리 모두의 일상은 잠시 멈춰 서서 “이건 도대체 뭐지?”를 묻느라 동시 정지되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길다’는 결점이 아닌 자부심, ‘복잡하다’는 흠이 아닌 색깔, ‘미쳤다’는 모욕이 아닌 찬사로 사전을 갈아엎었다. 6분은 숫자가 아니라 물리 법칙을 비웃은 아이디어의 길이였고, 시간을 넘어설 수 있다는 대담한 선언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 프레디 머큐리의 고독과 반짝임

프레디 머큐리를 보고 있으면 한밤중에만 피어나는 극지의 오로라가 떠오른다. 화려한 색채, 눈부신 곡선, 숨을 삼키게 하는 광도. 하지만 오로라를 떠받치는 땅은 늘 얼어붙은 침묵이었다. 잔혹할 만큼 환한 무대 위에서 프레디는 군중의 환호로 몸을 감싸지만,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호텔 방에서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갈 사람이 없구나”라는 독백에 얼굴을 묻는다. 그는 양극 사이를 분속 300km로 왕복하는 제트코스터였다. 메리에게 프러포즈하던 밤, 반지 속 보석이 빛을 품자 프레디의 눈도 스타라이트처럼 반짝였다. 그러나 몇 년 뒤 같은 반지를 빼내어 그녀의 손바닥에 얹어 줄 때, 반짝임은 고독의 잔향으로 변해 있었다. 골드 디스크 수십 장이 벽에 걸린 호화 저택, 끝없이 이어지는 파티, 테이블 위를 빼곡히 메운 샴페인 잔—이 모든 화려함은 어쩌면 ‘나를 사랑할 인간적인 손길 하나’를 구걸하는 비싼 배경 소품이었다. 그는 폴 프렌터의 가스라이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파티와 투어로 외로움을 지웠지만, 몸은 점점 비명을 질렀다. 영화는 에이즈 진단서를 손에 쥐고도 “멤버들에게는 공연 연습이 끝난 뒤에 말하자”고 숨 돌리는 장면에서 그의 속수무책 허무를 돌직구로 던진다. 결국 라이브 에이드 리허설장에서 “우릴 불쌍히 보지 마, 쇼는 계속돼야 해”라고 웃어 보이던 순간, 그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무대만이 허락한 짧은 반짝임을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다. 프레디의 고독은 그래서 아름답다. 추락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불태워 빛을 빚어낸 불사조의 잿빛 편광(偏光). 관객은 퀸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가도 갑자기 “이 인간적인 울음은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었을까”라는 슬픔에 가슴을 쿡 찔린다. 반짝임의 반대편엔 늘 어둠이 있고, 프레디 머큐리는 그 어둠까지 무대로 끌어올려 황금빛으로 물들여 버린 마술사였다.

보헤미안 랩소디 – ‘We Will Rock You’ 떼창의 탄생기

1980년대 초, 북미 투어 중이던 퀸은 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석에서 흘러나오는 같은 아쉬움을 들었다. “우리는 가사를 외워 왔는데 왜 함께 부를 기회가 없지?” 그 말에 브라이언 메이는 호텔 복도에서 두 번 발을 굴러 보고, 손뼉을 두 번 쳐 본다. 쿵―쿵―짝! 놀랍도록 통쾌한 리듬이 빈 복도를 울리며 달려갔다. 이 노래에는 화려한 기타 솔로도, 천상의 팔세토도, 복잡한 구조도 필요 없었다. 관중석 7만 명이 동시에 ‘악기’가 되는 구조, 바로 그게 중요했다. 프레디는 녹음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지고 “완벽한 굽소리와 박수를 위해서”라며 마룻바닥을 단단한 나무판으로 교체했다. 수십 개의 마이크를 천장에 달고, 멤버들과 스태프, 심지어 티 대접하던 직원까지 불러 모아 박수를 수백 번 샘플링했다. 그렇게 ‘쿵쿵짝’은 인위적 에코 대신 실제 사람들의 체온을 품었다. 가사 또한 미니멀리즘의 극치다. ‘We will, we will rock you!’—딱 이 한 문장으로 전 세계 스타디움을 지휘할 수 있다니! 프레디는 무대 위를 거닐다가 리듬이 시작되는 순간 손바닥을 번쩍 들고 사람들을 가르켰다. 관객은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심장을 두드리듯 발을 굴렀고, 지붕 없는 경기장은 거대한 드럼통으로 변했다. 흥미로운 건 그 떼창이 ‘노래를 듣는 팬’과 ‘노래를 만드는 퀸’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이다. 수십 년 뒤, 동네 축구장 스피커에서도 ‘We Will Rock You’가 울려 퍼질 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굴러 리듬을 맞춘다. 퀸은 ‘사용자 참여형 록’을 시대에 앞서 구현해 낸 셈이다. 영화 속에서도 이 곡의 탄생 장면은 유난히 유쾌하다. 로저가 “이건 드럼이 필요 없잖아. 나 놀아도 돼?”라며 삐치는가 하면, 존은 “베이스 두 박자 박수면 난 해고야?”라며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막상 테이프가 돌아가자 네 사람은 소년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방방 뛰었다. 그때 브라이언이 흘렸다는 말—“우리가 관객을 상상해 만든 리듬이, 언젠간 우리를 관객 속으로 끌어당길 거야”—는 1985년 웸블리 라이브 에이드에서 완벽히 증명됐다. 7만 명, 아니 전 세계 10억 명의 ‘쿵쿵짝’이 血流처럼 이어지던 그날, ‘We Will Rock You’는 단순한 응원가를 넘어 ‘함께 존재한다’는 인류 공동체의 비트가 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 어린시절부터 나는 알고 있었구나

영화관을 나서며 귓가에서 ‘Mama, oooh…’가 멀어질 때, 나는 뜬금없이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렸다. 운동장 스피커가 고장 나 트는 노래마다 음이 반 박씩 밀려 있던 그날, 친구들과 발을 구르며 “위윌위윌 락큐!”를 외쳤고, 곧이어 반 전체가 웃음 반 흥분 반으로 뒤엉켜 있던 장면. 그때는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이미 퀸이 심어 둔 거대한 스테이지의 일부였던 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기억을 총천연색으로 복원한다. 스크린에서 프레디가 피아노에 엎드려 가성을 끌어올릴 때, 객석의 나는 무심코 숨을 참는다. 그의 호흡이 끝나는 지점까지 같이 참고, 숨을 내쉴 때 비로소 내 폐에도 뜨거운 공기가 들어온다. 영화가 마치 록 콘서트처럼 느껴진 건 그 때문이다. 서사보다 먼저 음악이 심장 박동을 장악하고, 캐릭터보다 먼저 리듬이 관객의 몸을 흔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고개를 숙여 내 무릎을 톡톡 쳐 보았다. ‘쿵쿵짝’. 여전히 완주하지 못한 꿈이 있다면, 그 리듬에 맞춰 다시 발을 굴러 보라는 신호처럼 들렸다. 프레디의 한마디—“나는 별난 이방인이었지만,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 나일 수 있었어”—가 오래 맴돈다. 우리 각자에게도 무대는 있다. 잘 다듬어진 오페라처럼 길고 화려할 수도, ‘쿵쿵짝’처럼 단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길이도, 장르도, 박자도 아니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다짐. 오늘 하루가 조금 삐걱대도, 내일 다시 무대를 열고 첫 박을 울리는 용기. 고개를 들면 스포트라이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제는 우리가 ‘Rock You’를 외칠 차례다. 우리의 내일 그리고 미래를 위해 ‘Roc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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