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이야기 – 잊혀진 꿈의 등대

마리 이야기 포스터
마리 이야기 포스터

마리 이야기 – 잊혀진 꿈의 등대

어른이 되어 회색빛 사무실에 갇혀 지내던 ‘나무’는, 한 통의 전화와 낡은 상자 속 구슬을 계기로 순식간에 어린 시절로 회귀한다. 그 시절, 바닷가 외딴 마을에서 그는 폐등대를 매일 바라보며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을 꿈꿨다. 등대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꿈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관문”**이었고, 바다와 하늘의 푸른 경계를 건너면 언젠가 자신만의 빛을 찾으리라는 믿음의 심장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등대를 철거 대상이라는 낡은 낱말로 환원시켰고, 등대를 둘러싼 기억도 자잘한 생활비 명세서처럼 구겨져 서랍 속에 처박혔다. 영화는 이 등대를 “잊혀진 꿈”의 물적 증거로 삼는다. 사춘기 시절의 우리는 모험심·연대감·근거 없는 확신 같은 것들을 아무 계산 없이 품었지만, 성장하면서 타인의 시선과 경제적 논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등대가 철거를 앞두고 벼락에 부서질 때, 나무가 느끼는 상실감은 단순한 고향 풍경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과연 내 꿈을 어디까지 보존했는가”**라는 자기 고백이다. 천둥이 치고 파도가 삼키려는 순간, 등대 안쪽에 숨어 있던 환광(幻光)이 마지막 번쩍임을 남기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 한복판을 똑같이 내리친다. 어쩌면 우리도 마음속 등대 하나쯤 이삿짐 정리 때마다 놓아두었을지 모른다. 기억 속 등대를 되살리는 일은 허공에 낭만을 쏘아 올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지를 증명하는 작은 몸짓”**임을 영화는 고집스레 환기한다.

마리 이야기 – 갈매기가 전한 신호

눈보라 휘날리던 어느 겨울, 도시까지 날아든 갈매기 한 마리가 나무의 일상에 균열을 낸다. 바다를 박차고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온 새는 그 자체로 “잃어버린 원근감”을 상징한다. 우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바다는 점점 멀어지지만, 갈매기는 그 거리감을 단숨에 무력화하며 지나온 계절을 흔든다. 감독은 이 갈매기를 **‘시간의 편지’**처럼 활용한다. 새하얀 깃털에 묻은 소금기와 바람 냄새, 그 생물이 내지르는 거친 울음은 나무에게 “네가 잊은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라”고 속삭이는 경고음이다. 흥미로운 점은, 갈매기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이 파스텔 톤에서 순간적으로 맑은 남색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의 무채색 흐름을 베는 색채적 신호이며, 나무는 그 신호를 따라 잊힌 감각들을 되살린다. 실제로 갈매기가 처음 나타난 뒤, 나무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피해망상에 가까운 허전함에 사로잡힌다. 마치 잃었던 촉각이 되살아나듯, 그는 **“어디선가 중요한 것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불안과 들뜸을 동시에 느낀다. 갈매기는 이후에도 나무의 고백이나 선택의 갈림길마다 불현듯 솟구쳐,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노릇을 한다. 관객에게 이 새는 “우리가 무의식 중 눌러둔 동경과 불안”을 의인화한 존재다. 일상에 파묻힌 채 잊고 사는 꿈들은 어느 날, 뜻밖의 갈매기 울음처럼 귀를 찢고 들어온다.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나 등대로 달려갈 것인지, 창문을 닫고 이어폰으로 덮어버릴 것인지—영화는 그 선택을 관객 스스로 묻게 만든다.

마리 이야기 – 나무와 준우, 흔들리는 우정

나무와 준우의 관계는 영화가 그려내는 성장통의 축소판이다. 둘은 함께 동네를 누비며 하루가 다르게 커 나가던 ‘동격의 친구’였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 균형은 미세히 기울기 시작한다. 준우가 도시로 전학을 앞두고 느끼는 우월감과 두려움, 나무가 남겨질 것이라는 불안과 질투가 얽히며, 두 사람은 등대를 사이에 두고 팽팽히 흔들린다. 특히 준우가 짝사랑하던 숙이를 둘러싼 오해와 장난은, **“친구와 연인의 경계선에서 미숙한 마음이 선택하는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마다 마리의 신비로운 세계가 두 소년을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환상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겁에 질리고, 상대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 그 경험은 현실에서 구겨졌던 신뢰를 임시로 봉합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서로의 등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확장시킨다. 결국 두 소년이 등대 철거 직전 폭풍우 속을 질주하는 장면은, 어린 우정이 마지막으로 치른 통과의례다. 그 순간 나무는 처음으로 **준우가 아닌 ‘준우의 세계’**를 이해하려 애쓰고, 준우 역시 나무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우정이란 비밀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고도 곁에 머무는 선택”**임을 말한다. 관객 또한 어린 시절 친구와 나눴던 암호 같은 언어—함께 비밀 기지를 짓고, 서툰 고백을 숨겨주던 기억—를 떠올리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리 이야기 –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

상영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도시의 빌딩 숲 틈에 마침 흰 구름 한 점이 둥둥 떠 있었고, 창문 너머 어딘가에서 갈매기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마리 이야기』**가 불러낸 감정은 향수(鄕愁)나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과 현실 사이에 안전지대를 마련해두지 못한 채, 오늘도 아슬아슬한 발끝으로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자기 응시였다. 우리는 성장한다는 명목 아래 얼마나 많은 등대를 허물어 왔을까? 허물어진 자리에 세운 것은 편리함과 합리성일지 몰라도, 그 불빛이 안내하던 방향감각까지 대체하지는 못했다. 영화는 잔잔한 수채화 같은 색감으로 “네 안의 등대를 기억하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일상의 회색 화면 속에 파스텔 한 줄을 고집해 보기로. 쉬는 시간마다 노트를 꺼내 오래 미뤄둔 글 한 줄을 적는다든가, 창가에 작은 구슬 하나를 붙여 두고 업무 중 가끔 빛을 굴려 본다든가. 그것이 거창한 진로 변경이 아니더라도, **“환상의 여백”**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숨이 조금 더 깊어지는 기분이다. 언젠가 또 다른 폭풍우가 몰려올 때, 우리는 각자의 마리를 떠올리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컷, 깨진 구슬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작은 불씨를 비춘다. 그 빛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잊혀진 꿈의 등대는 마음속에서 다시 불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그것이 **『마리 이야기』**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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