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틀 맨하탄 – 10살 게이브의 첫사랑 실험
초등학교 5학년, 키는 전교 평균에도 못 미치고 은근히 소심한 편에 속했던 게이브에게 로즈메리 텔레스코는 그저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였다. 하지만 가라테 도장 구석에서 처음 짝을 맞춰 주먹을 부딪치던 날, 그의 뇌리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전기가 찌릿’ 하는 감각이 번개처럼 내려쳤다. 여자아이와 손바닥이 맞닿은 시간이 채 세 초도 안 되었건만 볼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열기가 솟구쳤고, 심장은 그간 농구장 전력질주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속도로 난리를 피웠다. 게이브는 이 불가해한 체내 폭죽을 해석하기 위해 어린 나름의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성장 호르몬 변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강 잡지를 찾아 읽고, 부모님의 낡은 러브 스토리를 뒤적여 보며, 때로는 동네 형에게 “너 첫사랑이 뭔지 알아?”라고 능청스럽게 묻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도 로즈메리를 볼 때마다 퍼올라 오는 두근거림을 명쾌히 해석해 주지 못했다. 결국 게이브는 결론을 내린다. ‘실험은 몸으로 하는 거야!’ 그는 로즈메리가 타고 다니는 킥보드 속도를 기억해 두었다가 같은 모델을 대여점에서 빌려 와 연습을 거듭했고, 그녀가 좋아한다는 레몬 스무디 맛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주방 믹서기를 밤마다 돌려 대참사를 빚었다. 친구들에게 “과학 프로젝트”라 둘러대며 로즈메리 관찰일지를 쓰던 그 작은 노트에는 날짜, 기상 상황, 로즈메리가 웃은 횟수, 본인이 심장 두근댄 시간 같은 기막힌 통계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실험의 최종 목표? 물론 ‘첫 키스의 순간을 데이터로 증명하기’였다. 열 살 소년이 세상 둘도 없는 진지한 얼굴로 사랑을 과학하겠다는 그 순간, 관객은 새삼 깨닫는다. 첫사랑은 논리로 풀어낼 수 없는 난제지만,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실험이기도 하다는 것을.
리틀 맨하탄 – 로즈메리와 킥보드 데이트의 설렘
토요일 아침 센트럴파크 남동쪽 입구, 게이브는 알람도 없이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창문 너머 하늘빛이 퍼지기도 전부터 신발끈을 세 번 고쳐 매고, 엄마 화장대에 있던 헤어젤을 ‘어른 남자처럼’ 과하게 바르느라 실수로 이마까지 번들거리게 해 놓은 뒤였다. 약속 시각은 열 시.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그가 한 시간 반 가까이를 공원 벤치에서 배배 꼬이며 기다린 이유는 하나, 로즈메리와 둘만의 킥보드 데이트에 지각이란 변수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타난 순간, 바람에 흩날리는 말갈기 같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헬멧 끈 아래 살짝 파인 보조개가 게이브의 심장을 또다시 압수했다. 함께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동안, 뉴욕의 가을 바람은 두 아이 사이를 가로지르며 체온을 묘하게 섞어 놓았다. 로즈메리가 앞장서 브로드웨이 방향 표지판을 지나칠 때마다 게이브는 재빨리 뒷바퀴로 브레이크를 밟아 그녀의 속도에 맞췄고, 그녀가 크고 작은 돌부리를 피할 때마다 “왼쪽!” “조금 더 오른쪽!”을 외치며 보호본능 가득한 가이드가 되었다. 어느새 두 아이는 맨해튼의 복잡한 도로를 작은 바퀴 위에서 유영하는 ‘두 마리 연어’ 같았다. 별다른 목적지도 없이 목적지가 되어 준 그 길 위에서, 로즈메리는 게이브에게 부모님의 이혼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게이브는 상대가 울지 않도록 속도를 살짝 줄이며 “난 네가 웃을 때가 더 좋아”라고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그 말에 로즈메리가 킥보드를 멈추고 담벼락에 몸을 기대어 미소 지었을 때, 게이브는 직감했다. 이 순간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똑같은 냄새와 온도로 기억될 거라고. 첫사랑은 꼭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영화관이 아니라, 공원 바닥의 낙엽과 킥보드의 미끄럼 소리에서도 충분히 완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열 살 꼬마들이 몸소 증명해 냈던 것이다.
리틀 맨하탄 – 이혼 가정이 건넨 어른스러운 통찰
게이브의 집 냉장고에는 우스꽝스러운 포스트잇 전쟁이 한창이었다. 엄마 구역, 아빠 구역, 누구도 건드리면 안 되는 중립 지대까지—치즈 한 장, 올리브 몇 알을 사이에 두고 노란 쪽지가 영토선처럼 붙어 있었다. 부모님은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법원 서류’와 ‘양육권’ 같은 단어를 날카로운 힙합 가사처럼 주고받았고, 거실엔 언제나 싸운 뒤의 정적이 어색하게 떠돌았다. 열 살 소년에게 이 풍경은 사랑이 부식되어 가는 교과서였다. 그래서 그는 로즈메리를 향한 감정이 처음 피어날 때부터 내심 겁먹었다. ‘모든 사랑은 결말이 좋지 않아’라는 슬픈 공식이 이미 가슴속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혼 가정이야말로 게이브에게 특별한 통찰을 선물한다. 그는 부모님의 갈등을 목격하며 ‘사랑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진실을 일찍 깨달았기에, 오히려 로즈메리를 대할 때 더 신중하고, 더 솔직해질 책임을 느꼈다. 첫 데이트에서 로즈메리가 “우리도 언젠가 멀어질까?”라고 농 반 진 반 묻자, 게이브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좋아하려고 해”라고 답한다. 그 한마디에 로즈메리는 쿡 웃고는 “너는 좀 어른 같다”고 속삭였고, 게이브는 속으로 ‘나는 아직도 초콜릿 우유가 좋은데…’라고 되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이혼이 남긴 상처는, 게이브에게 성숙의 가속 페달을 밟게 해 준 셈이다. 결국 사랑을 ‘영원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어른스러운 성장의 증표가 된다.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가정의 균열은 누군가의 세계를 부숴 놓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넓은 시야를 열어 주는 틈이 되기도 한다고.
리틀 맨하탄 – 떠오르는 첫사랑의 기억
‘첫사랑은 대체 왜 그렇게 아프면서도 달콤했을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나는 어린 시절의 멍울 같은 기억을 만지작거렸다. 학교 운동장 한쪽, 그네를 밀어주다가 불현듯 손등이 맞닿았던 순간의 전류, 그리고 그 후 며칠간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정체불명의 열병—영화 속 게이브의 얼굴이 내 과거와 겹쳐졌다. <리틀 맨하탄>은 초콜릿 우유처럼 달콤한데, 마시고 나면 묘하게 목이 저릿하다. 사랑이란 단어를 이제는 너무 쉽게 쓰고 너무 빠르게 소비하는 어른이 되어 버린 나에게, 열 살 소년의 두근거림은 잊힌 감각을 되살리는 디폴트 값 같은 것이었다. 영화는 ‘첫사랑은 실패도 연습도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 그 자체’라고 속삭인다. 게이브가 결국 로즈메리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에도, 그의 표정에는 패배자 대신 탐험가의 기품이 어려 있었다. 인생 최초의 설렘을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극장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오래전 연락이 끊긴 초등학교 친구 이름을 검색하다가, 곧 화면을 꺼 버렸다. 굳이 찾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음속 센트럴파크에 세워 둔 작은 벤치 위, 그때의 떨림과 즐거움은 여전히 제 초록빛으로 살아 있을 테니까. 첫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무르익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작은 영화에, 조용히 손을 흔들며 극장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