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 노년과 청춘의 맞춤형 인생수업

인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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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 노익장 벤의 우아한 반란

벤 휘태커의 첫 출근길은 마치 알전구가 켜지는 순간처럼 반짝이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설렘 뒤에는 70년 인생이 켜켜이 쌓은 주름과 퇴적된 시간의 먼지가 깔려 있다. 그는 이미 무수한 회의록과 연차증명서, 구식 전화벨 소리를 지나쳐 왔다. 그런 그가 손때 묻은 가죽 가방을 다시 매는 이유는 단순히 무료함을 덜기 위해서가 아니다. 벤은 ‘나이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박제되어 가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두 팔을 벌려 세상과 다시 포옹하기로 결심한다. 첫 주에 맡은 일이 사무실 관플러그를 꽂고 전선을 정리하는 소소한 잡무였다고 해도, 벤은 그 일을 대충 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이란 건 없어, 작게 보는 눈만 있을 뿐”이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허리를 숙인다. 그가 자리를 정리해 준 신입 에디터들은 예의상 고맙다고 말하다가도, 옆자리 책상에 깔끔히 놓인 연필꽂이를 보고 나서야 그의 디테일에 감탄한다. 벤의 반란은 이처럼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어바웃더핏의 바통은 스피드와 혁신이라지만, 벤은 기다림과 성실함이라는 오래된 미덕을 브랜드화한다. 회의실 스크린이 멈출 때 그는 책상 밑을 기어 들어가 케이블을 찾아내고, 누군가가 밤샘 끝에 쓰러질 때 그는 커다란 보온병에 수프 한 병을 끓여온다. 그의 반란이 우아한 이유는,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공기를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은퇴는 직함을 내려놓는 거지 역할을 내려놓는 건 아니야.” 벤 스스로 입 밖에 낸 적 없는 이 말을, 직원들은 매일 아침 그의 맨질거리는 구두코에서 읽어 낸다. 새로운 기술이 매일 업데이트되어도, 진짜 업데이트는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진리―그것이 벤이 몸소 시연해 보인 우아한 반란의 핵심이다.

인턴 – 줄스&벤의 세대 통역기

줄스 오스틴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회의실과 라운지를 누비는 워킹맘 CEO다. 그녀가 믿는 가치는 속도, 유연성, 그리고 ‘직감적 결단’이다. 반면 벤은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발을 멈추고 동료의 얼굴을 읽는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일하는 두 사람이 처음 마주쳤을 때, 줄스는 벤의 경력을 ‘골동품’이라 여겼고, 벤은 줄스의 광속 회의 흐름을 ‘폭풍’처럼 느꼈다. 그러던 둘 사이를 매개한 것이 바로 ‘세대 통역’이다. 벤은 줄스에게 “리더십은 일방향 스프린트가 아니라 사방의 숨소리를 듣는 마라톤”임을 가르친다. 회의 중 가라앉은 직원에게 먼저 눈길을 주고, 모든 메모에 손글씨 한 줄을 남기는 작은 제스처로 줄스는 리더십의 온도를 재조정한다. 반대로 줄스가 벤에게 가르쳐 준 것도 있다. 결재라인보다 빠른 이메일, 실시간 트렌드 분석 도구, 세로로 보는 모바일 쇼핑 UI….. 벤은 쉼호흡 대신 짧은 클릭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익힌다. 그 과정을 통해 ‘세대 차이’라는 단어는 경계선이 아닌 다리로 바뀐다. 줄스는 벤의 경험치를 API처럼 호출하고, 벤은 줄스의 즉흥력을 하드 드라이브에 새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고객 불만 현장을 수습하던 밤, 줄스가 말한다. “벤, 내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옳을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벤은 이렇게 답한다. “옳은 결정은 곧바로 검증할 수 없어. 하지만 함께라면 틀릴 확률이 줄어들지.” 이 한마디는 세대 통역기가 번역해준 최종 자막이다. 나이와 속도, 가치관의 다름을 ‘손해’나 ‘장벽’이 아닌 ‘품질 개선’의 요소로 바라보기. 결국 줄스와 벤은 서로의 언어를 빌려 부서 간, 세대 간, 심지어 가정과 회사의 문턱까지 낮춘다. 그리하여 어바웃더핏 사무실에는 “어제까지는 스캔들이던 차이가, 오늘부터는 협업이 된다”는 새로운 격언이 퍼진다.

인턴 – 70대 신입의 워라밸 혁명

벤의 시계는 6시에 맞춰져 있다. 6시면 기상, 6시면 귀가. 하지만 그 12시간 안에서 그는 ‘일(Work)’과 ‘삶(Life)’ 사이의 방점을 따로 찍지 않는다. 업무 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와중에도 그는 매일 아침 시장에서 산 신선한 채소로 점심 샐러드를 준비하고, 늦은 저녁이면 요가 매트를 깔아 하루의 긴장을 풀어낸다. 동료들은 처음엔 그를 ‘잔잔한 연못’이라 여겼지만 곧 깨닫는다. 그 연못 밑에는 엄청난 추진력이 흐르고 있음을. 중요한 건 벤이 자기 시간을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회의가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날에도, 그는 잠시 휴게실 베개에 기댄 뒤 6시 정각에 일어나 넥타이를 맨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려서가 아니라, 시간을 쪼개 쓰는 능력이 70년간 몸에 각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루틴은 줄스에게도 파급력을 발휘한다. 매일 밤 11시에야 퇴근하던 그녀에게 벤은 “밤을 헌납한다고 해서 회사가 더 사랑해 주는 건 아니야”라고 조언한다. 이어서 가볍게 목 스트레칭을 시범 보이며 “CEO도 근육이 뭉치면 의사 대신 주주가 먼저 알아본다”고 농담을 덧붙인다. 결국 줄스는 주 1회 재택근무를 선언하고, 남편과 딸에게 ‘우선순위 교정’이라는 선물을 건넨다. 워라밸 혁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벤이 제안한 ‘퇴근 종’ 제도가 도입되자 사무실은 7시 이후 불이 꺼지고, 대신 아침 생산성이 15% 높아진다. 누구 하나 악다구니를 쓰지 않았는데도, 회사는 더 건강해진 셈이다. 벤이 몸소 증명한 것은 간단하다. 균형은 20대가 여유로울 때만 누릴 수 있는 신세대 특권이 아니라, 70대 신입이 스스로 지켜 낸 생존 노하우라는 점이다. 그가 보여준 워라밸은 화려한 기획안이나 앱 알림이 아니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자기 삶의 GPS를 리셋하는 습관’ 그 자체였다.

인턴 – 인턴처럼 배우고, 벤처럼 나누자

스크린 불이 꺼지자마자 알람처럼 울린 생각이 있다. “내 하루는 누구에게 인턴인가?” 현재진행형인 나의 일상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첫 경험이 될 수 있다. 벤이 줄스에게 그랬듯, 나도 모르게 옆자리 동료의 ‘내일’을 바꿔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무심히 보낸 시간들까지도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되돌아보니 오늘만 해도 회사에서 “고생했어요” 대신 “내일까지 가능할까요?”라고 쫓아세운 메시지가 몇 개나 됐는지 셀 수 없었다. 내가 던진 말이 피로를 더했을지, 혹은 주말을 빼앗았을지 떠올리며 괜스레 미안해졌다. 벤처럼 여유로운 한 줄을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내일은 출근길 카페에서 커다란 보온병을 사기로 했다. 스프 대신 커피를 담아, 야근하는 후배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두고 싶다. “이건 워라밸의 안부 인사입니다”라는 메모를 곁들여서. 큰일이 아니어도 된다. 사소한 진심 하나가 오늘의 무게를 가볍게 바꿔줄 수 있으니까.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나도 모르게 허리를 펴고 셔츠 단추를 정리했다. 벤의 반듯한 셔츠 주름이 내 등판에도 스며든 느낌이었다. 그 단정함은 단순한 복장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인생에는 퇴직이 있어도, 은퇴는 없다.” 그러니 오늘도 인턴처럼 배우고, 때로는 벤처럼 나누자. 내가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커리어보다 오래 남는 가치를 가질 것이다. 내일 아침, 출근 카드 찍는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새로운 경험 앞에 눈을 크게 뜨고, 깜빡이지 않는 법을 잊지 않기로. 어느 세대든, 어느 자리든—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진심 한 줄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업데이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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